매력적이고, 새롭고, 재미있기까지 한 한국소설을 발견하는 것은 모든 독자들의 기쁨이다. (교보문고 소설MD 구환회)
김유정문학상·젊은작가상·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한 저자 김중혁이 다시 한 번 특유의 발랄하고 참신한 상상력을 가동했다. 그의 세 번째 장편소설인 이 책은 일종의(?) 탐정소설이다. 그러나 평범한 탐정이 아니다. 경찰 출신 탐정인 주인공 구동치가 하는 일은 의뢰인이 감추고 싶어 하는 흔적이나 비밀을 말끔하게 없애주는 것. 이른바 '딜리팅'이며, 그는 '딜리터'라 할 수 있다.
누구나 감추고 지우고 싶은 비밀 하나쯤은 갖고 있을 터. 주인공은 자신과 계약한 사람이 '죽은 뒤에 기억되고 싶은 부분만 남기고 떠날 수 있도록' 그의 발자취 일부와 흔적을 지우는 일을 한다.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글부터 편지·사진·하드디스크 같은 실물까지 말끔하게 삭제해주고 돈을 받는다.
그런데 구동치는 의뢰인이 요청한 모든 물건을 없애지는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모르는 세계는 늘 어떤 방식으로든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물건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없애버리기로 했던 것의 일부를 간직해둔다.
주인공 구동치는 균형을 중시해 테니스를 좋아하고 오페라 아리아를 즐겨 듣는 고독하지만 강한 자의식을 구축하고 있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살인사건과 미스터리, 정의가 아니라 돈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 등 범죄소설의 관습적 장치가 동원돼 있지만 개성 있는 인물을 중시한 독특한 설정이 진부함을 날려버렸다. 탐정사무실이 있는 악어빌딩 주변 인물들의 건조하면서도 재치 있는 대화들이 소설에 감칠맛까지 더해준다.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