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개월 만에 내놓은 대책이 고작 은행 창구를 쪼겠다는 겁니까"
금융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 21일 발표된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방안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말이 좋아 선진형 대출 관행을 만들겠다는 것이지 뒤집어 생각하면 그동안 가계 빚이 증가한 이유를 은행에 덮어씌우겠다는 얘기 아니냐"고 꼬집었다.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을 놓고 업계는 물론 당국 안팎에서도 뒷말이 많다. 방법론이 잘못됐다는 지적부터 효과에 대한 의구심도 나온다. 사실 가계부채관리협의체의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운 측면이 크다. 최초 아이디어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한국은행·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통계청 등 관계 부처들이 모두 모여 가계부채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것에서 시작됐다. 반장은 정은보 기재부 차관보가 맡았다. 가계부채 관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기재부가 총괄하겠다는 의도였지만 시장에서는 금융이 부동산 경기를 살리는 수단 역할에 한정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가계부채를 바라보는 부처 간 관점 차이는 경기 회복이란 거스를 수 없는 명분 앞에 기를 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봐도 이번 대책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국토부의 유한책임대출(비소구대출) 정도다. 이것도 새롭다는 의미일 뿐 본질적인 가계부채 관리와는 거리가 있다. 나머지 대책은 금융 당국이 일찍이 밝혀왔던 가계부채 구조 개선의 언저리에 놓인 것들뿐이었다. 협의체에 참석한 한 당국자는 "자료는 물론 대책들을 금융 당국에서 만들어가면 기재부는 가부를 결정하는 식으로 회의가 진행됐다"고 털어놓았다. 전문가들이 가계부채 관리의 근본대책으로 꼽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강화도 한은이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급증하는 가계부채를 잡지 못하면 결국 책임은 금융 당국이 떠안아야 한다. 은행 창구 지도도 부담이 따른다. 금융개혁의 기치 아래 금융사의 자율과 책임 문화를 강조하는 마당이지 않은가. 대출자의 원성도 감수해야 한다. 과거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DTI를 강화했을 당시에도 금감원에 대출자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규정도 아닌 행정지도 형식으로 대출을 제한하겠다는 이번 정책의 후폭풍은 불 보듯 뻔하다. 정부 대책을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가장 먼저 마이크를 잡은 이는 정 차관보였다. "대책반장"이라고 밝힌 그는 간단한 모두발언만 한 뒤 금융위 관계자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앞으로 가계부채 책임과 뒤치다꺼리도 협의체에서 금융 당국으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