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AI는 人災] 방역망 '구멍'…업자들 감염 오리 마구 유통

당국선 바이러스 특성·유입경로 파악조차 못해<br>전국 확산 가능성 배제못해…피해 눈덩이 우려


포근한 4월에 때아닌 맹위를 떨치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AI)는 사실상 인재(人災)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계초소망을 뚫고 AI 감염 오리를 불법 유통한 업자들은 전라도뿐 아니라 충청도 지역까지 무려 116곳의 농가와 업소를 드나들었고, 방역당국은 소비자들에게 노출된 가든의 오리가 폐사할 때까지도 그 사실을 몰랐다. 수백만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되는 동안에도 AI 바이러스는 전라남북도를 오염시킨 데 이어 경기도까지 확산됐다. 경기도 평택 농가에서 확인된 H5 항원은 아직 고병원성 여부가 가려지지 않았지만 과거 사례로 비춰볼 때 가능성이 농후한 실정이고 충남 지역도 이미 안전지대로 볼 수 없다. AI 발생 후 불과 보름 만에 발생건수는 이미 지난 2006년 4개월간의 발생 건수를 훌쩍 넘어섰다. 과거 AI 사태가 최초 발생일로부터 4개월가량 지속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허술한 방역망 뚫고 확산 일로=지난 3일 전북 김제 용지면 산란계 농장에서 올해 최초로 고병원성 H5N1형 AI가 확인된 다음 날 방역당국이 가금류 이동을 금지시킨 이 지역 방역대의 경계를 뚫고 오리 유통업자 두 명이 AI 바이러스에 오염된 오리 수백마리를 반출했다. 이 유통업자들은 이후 수일 동안 25군데 농가와 식당이나 가든 등 116군데 판매업소를 아무런 제재 없이 돌아다녔다. 이후 이들이 드나든 김제 금산면의 한 식당에서 AI 양성반응이 나오면서 경찰에 덜미가 잡혔지만 이들은 이미 AI에 오염된 차량으로 충남 논산ㆍ천안 등을 마음대로 돌아다닌 상태였다. 당국은 이들이 출입했던 농장과 식당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해 예방 살처분 지시를 내리는 등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방역망에 구멍이 뚫려 있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김창섭 농림수산식품부 동물방역팀장은 “김제는 산란계의 집산지로 농가가 워낙 많아 통제 초소가 아무리 많아도 빠져나갈 확률이 많다”며 “인력도 턱없이 부족해 농가의 신고나 참여 없이 현재 방역시스템에서 불법유통을 잡는 것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는 사이 당초 전북 지역에만 머무르던 AI 바이러스는 전남에 이어 경기도로 확산됐다. 잠시 주춤하던 신고 건수가 주말 이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전북 김제의 1차 발생 당시 해도 조기 신고와 살처분이 이뤄졌다며 여유를 보이던 방역당국도 AI 확산에 뒤늦게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유입 경로, 바이러스 특성도 ‘깜깜’=빠른 확산만큼이나 국민들의 불안을 자극하는 것은 이번 AI가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2003년 12월과 2006년 11월에 발생한 AI는 겨우내 기승을 부리다가 날씨가 풀리기 시작한 3월 중순에 소멸됐다. 당국이 11월 AI 비상령을 선포해 이듬해 2월 말 비상령을 해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기온 상승과 함께 소멸된 국내 유입 AI 바이러스에 대해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P)에서도 인체 감염성이 낮다는 점을 확인, AI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올해 발생한 AI는 과거와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전에는 이미 바이러스가 소멸됐을 시점인 4월에 확산되기 시작해 좀처럼 사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농식품부는 겨울 철새가 바이러스를 옮겨왔던 과거와 달리 따뜻해진 기온 때문에 아직까지 국내에 남아 있던 철새가 뒤늦게 바이러스를 옮겼거나 농장에 고용된 몽골ㆍ베트남ㆍ중국 등지 출신 외국인 근로자들이 본국에서 바이러스를 묻혀 왔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유입 경로는 오리무중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AI가 과거처럼 인체 감염성이 적은 바이러스와는 성질이 다른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현재 진행 중인 유전자 검사가 마무리되기까지는 어떤 추측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어서 인체 감염성이 높은 동남아의 바이러스 유형이 새로 국내에 유입됐을 가능성도 현재로서는 배제하기 힘든 상황이다. 만일 이번 바이러스가 기존과는 다른 것으로 판명될 경우 현행 유입방지 대책은 쓸모없는 것이 되며 인체 감염가능성에 대해서도 새로운 조사와 대책 마련이 이뤄져야 한다. ◇지금 잡지 못하면 피해 ‘눈덩이’된다=이제 문제는 AI가 어디까지 퍼져갈 것 인지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15일 농식품부 상황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발생 후 보름이 지나도록 AI가 진정되지 않아 국민들이 불안해 한다”며 “과거 진정되기까지 120일가량 걸린 사례를 볼 때 오는 6~7월로 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조기에 확산을 차단하도록 좀더 노력해달라”고 말했다. 우려가 현실이 돼 이번 사태가 경기ㆍ충청 등 전국으로 확산될 경우 농가 피해외 재정 부담은 물론 내수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과거 발생했던 AI 사례를 살펴보면 2003년 전국 10개 시ㆍ군에서 발생한 19건과 2006년 5개 시ㆍ군의 7건의 AI로 투입된 재정 지원 규모는 각각 1,531억원과 582억원. 정승 농식품부 식품산업본부장은 “현재까지 피해액은 300억원 규모이며 발생건수도 지역 기준으로 보면 과거보다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국이 집계한 공식 발생건수가 이미 11건에 달하고 있는데다 최초 발생지인 김제가 산란계의 집산지여서 살처분된 닭과 오리 수는 이미 과거와 비슷한 수준에 달하고 있다. 14일 현재까지 방역 살처분 대상 가금류는 총 345만마리, 이 가운데 이미 살처분된 수만 192만마리에 달하고 있고 경기와 충청으로의 확산 가능성을 감안할 때 이는 앞으로도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농식품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전국의 산란계 수가 1억6,000마리에 달해 400만마리 가까이 살처분이 돼도 수급에는 지장이 없다”며 “과도한 소비자 불안심리를 유발하지 않도록 협조해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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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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