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올 주주총회를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 다음주부터 본격 개최되는 대기업의 금년도 주총이 검찰의 SK그룹에 대한 수사와 맞물려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시민단체와 소액주주들은 새 정부의 재벌개혁을 등에 업고 이번 주총을 겨누고 있어 지난해까지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예고하고 있다. 재계도 상황의 심각함을 인식, 각종 변수에 대비하고 있으나 경우에 따라서는 후유증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여 올 주총이 대기업들의 경영관행에 크나 큰 전기(轉機)가 될 전망이다.
대기업의 주총은 오는 28일 삼성전자와 LGCI가 4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첫 테이프를 끊으면서 열린다. 재계는 “SK에 대한 검찰수사가 참여연대의 문제제기에서 비롯된 만큼 올 주총이 사상 유례 없는 격전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기업 치고 시민단체나 소액주주와 티격태격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다. SK그룹 외에도 현재 삼성ㆍLGㆍ한화ㆍ두산그룹 등이 오너 일가의 부당거래 등과 관련, 사법당국에 고발돼 있거나 소송이 진행 중에 있다. 소액주주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주총임을 감안한다면 재계의 긴장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주총은 어느면에서 형식적으로 치뤄지는 것이 관례였다. 미리 짜여진 각본에 맞추어 일사천리로 진행돼 거의 만장일치로 끝나는 것이 저간(這間)의 사정이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 들어 시민단체가 소액주주를 대변하면서 시나리오에 차질이 생기긴 했지만 오너들의 뜻이 그대로 반영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뜻밖의 변수가 튀어 나온 것이다. 바로 SK에 대한 검찰수사다. 재계가 이를 새 정부의 재벌개혁에 대한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도 시점의 미묘함을 읽고 있는 까닭이다. 새 정부는 경제정책의 핵심으로 재벌개혁을 내세우고 있다. 지배구조 개선이나 증여 상속세 포괄주의ㆍ집단소송제 등은 꼭 추진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SK에 대한 검찰수사도 초점이 증여ㆍ상속 및 부당 내부거래라는 점에서 올 주총에서 시민단체의 압박이 한층 가중될 전망이다.
주총은 지난 한 해의 경영실적을 평가하면서 다음 해의 계획을 심의하는 장소다. 그러나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오너 일가의 입김으로 주총이 형식에 치우친 것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소액주주를 대변하고 있는 시민단체가 나선 것도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그러다 보니 시민단체의 경영진에 대한 시각은 부정적이 돼 버렸다. 재벌그룹에 대한 고소ㆍ고발도 시민단체가 대표하고 있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비 정부기구`(NGO)로서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을 가져서는 곤란하다. 기업에 대한 일정 수준의 권고는 좋지만 경영에 대한 간섭으로 마찰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경영은 일단 경영진에 맡겨야 한다. 올 주총이 관심을 끄는 이유다.
<김영기기자 you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