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러자고 빅딜을 했나.」삼성-대우, LG-현대간의 빅딜작업이 진행되는 과정을 보며 대부분의 국민들은 의아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당초 정부가 발표한 빅딜의 모양새와는 전혀 딴판으로 사태가 마구 엉키면서 빅딜의 효용성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한마디로 이런 식의 빅딜이라면 우리 경제를 치유하는 처방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결과가 될지 모른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빅딜 대상 기업들의 반발에서부터 비롯된다. 피인수 대상으로 지정된 업체들이 빅딜의 취지에 어긋나는 무모한 조건을 내세워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더욱이 지역감정에 편승한 정치논리까지 끼여들면서 빅딜은 기본개념에서부터 혼선을 빚는 아노미(혼돈)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무엇 때문에 빅딜을 하는지, 빅딜은 과연 무엇을 추구하는지가 불분명한 채 법과 제도와 정책의 우선순위가 뒤엉켜 원칙을 마구 뒤흔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LG반도체 비상대책위는 현대전자에 통합되는 조건으로 60개월분의 위로금을 지급하고 고용승계 후 최소 5년간 고용을 보장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삼성자동차는 기존 모델인 SM5의 계속생산과 고용승계를 인수기업인 대우자동차측에 요구해놓은 상태다. 정부는 정부대로 시한에 쫓겨 이같은 요구사항을 수용해 줄 것처럼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빅딜 회의론은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빅딜은 엄연히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수단의 하나일 뿐이다. 과잉설비와 과다부채·손실누적 등 대기업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고단위 처방이다. 대상기업이나 소속 근로자들이 어느 정도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기업부터 살리자는 위기대응 차원의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빅딜의 근본취지를 도외시한 채 과잉설비를 그대로 인수하고 제품과 대리점·협력업체, 고용인력까지 100% 승계해야 한다면 굳이 빅딜이라는 어려운 길을 택할 이유가 없다. 이는 구조조정도 아니며 고질병을 치유하기 위한 고육책도 아니다. 그저 부실기업을 떠넘기는 맞교환일 뿐이며 부실덩어리를 더 키워 악화시키는 「부실 확대형」 흥정일 뿐이다.
이미 노사정 합의로 정리해고가 수용된 마당에 빅딜 대상업체라고 해서 고용승계를 보장해야 한다면 애써 만든 법과 제도는 존재이유를 잃게 된다.
물론 해당업체 직원이나 지역주민들에게 피해가 갈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기업통합에 따라 대규모 인력방출이 불가피하고 실업사태와 지역경제 위축이 우려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은 정부가 구조조정 후유증을 치유하는 차원에서 사후적으로 해결할 사안이지 바로 이것 때문에 빅딜이 성사되느냐 무산되느냐가 좌우될 수 있는 핵심사항은 아니다. 합의과정이 어떻든 빅딜은 정부가 국민과 외국투자가들에 공언한 약속이며 손쉽게 번복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해당업체들은 「결사반대」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루 빨리 대국적인 현실인식과 공존 모색에 나서야 한다.
아울러 정치권도 빅딜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를 배제해야 마땅하다. 정치논리가 경제에 개입해 정책왜곡을 가져온 결과가 어떤 비극을 불렀는지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제청문회에서 잘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빅딜은 경제회생을 위한 구조조정의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추진돼야 한다.
구조조정이 정치논리와 집단이기주의에 눌려 정상궤도에서 벗어난다면 이는 단순히 한때의 특혜시비로 그치지 않고 우리 경제의 회생을 가로막은 또하나의 왜곡사례로 손가락질받게 될 것이다. 【이종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