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기업들의 현금성 자산이 역대 최대 규모로 불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16일 한국은행과 금융투자 업계 등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의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3·4분기 말 기준 158조원으로 전년 대비 8조원 늘어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1년치 국가예산의 절반에 육박하는 금액이며 10년 만에 100조원이나 늘어난 수치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이 돈을 쌓아두고 투자를 꺼린다는 지적이 있다. 여기에다 지난해 500대 기업의 배당성향이 23%로 주요국 중 최저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투자·배당 기피로 자금순환을 저해하고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비판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비판은 가당치 않다. 기업의 재무적 판단은 시장환경과 투자의 기대수익을 감안한 자율적 결정사항이기 때문이다. 설비 투자와 연구개발(R&D) 투자, 인수합병(M&A) 등의 자금집행은 최적의 조건에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실행 타이밍의 완급을 조절하고 동원 가능한 자금 규모를 조절해나가는 것이 당연하다. 미국의 애플이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194조원이나 확보해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도 규모가 각각 94조원과 68조원에 달한다. 반면 삼성전자는 60조원으로 애플의 194조원에 대항해야 하는 처지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상장기업의 총자산 대비 현금성 자산 보유 비율은 9.3%로 미국(23.7%)과 일본(21.4%)에 비하면 되레 크게 낮은 편이다. 투자를 꺼린다고 기업만 탓할 게 아니라 축적된 자금 여력이 경제 활성화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대대적 규제혁신과 기업가정신의 회복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