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과학자도 진화해야… 14T MRI 개발 주력"

조장희 가천의과학대 뇌과학연구소장<br>"정부 지원 포함 1,500억 투자… 4년내 완료"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장치(PET)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밑천을 가지고 호떡 장사를 하다가 제과점을 낸 격이지요. 과학분야는 3~4년 지나면 핫 토픽(hot topic)이 없어지기 때문에 과학자는 늘 진화(evolution)해야 합니다. 끝없는 전쟁인 거죠. 그래야 늘 앞서갈 수 있지 하나만 잘 안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조장희(75ㆍ사진) 가천의과학대 뇌과학연구소장은 학부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뒤 핵물리학자로 변신해 PET, 자기공명 단층촬영장치(MRI) 등 뇌 영상기기를 연구하다 현재 뇌과학을 파고들고 있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과학분야 노벨상에 가장 근접해 있는 과학자로 꼽힌다. 지난 1973년 컴퓨터 단층촬영장치(CT)의 수학적 원리를 분석한 데 이어 1975년 세계 최초로 PET를 개발했다. 인체영상기기분야 삼총사인 CTㆍPETㆍMRI를 모두 개발한 과학자는 그가 세계에서 유일하다. 조 소장은 요즘 MRI 성능을 향상시키는 연구와 함께 뇌 신경을 움직이는 화학물질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가천의대 뇌과학연구소는 2005년 국내 최초로 7테슬러(7T) MRI를 도입, 이를 PET와 셔틀방식으로 결합시켜 세계 최초의 PET-MRI 융합기기(NRI 7.0T)를 개발했다. PET와 MRI 기기를 서로 다른 방에 두고 방 사이를 간이 선로를 이용해 오가며 순차적으로 환자의 뇌를 촬영하는 방식이다. PET는 신경화학물질의 변화를 잘 관찰하지만 해상도(2.5㎜)가 낮기 때문에 이를 고해상도(0.2㎜)의 MRI가 보완해준다. 이 기기가 촬영한 뇌 영상은 너무 선명해서 해외 과학자들도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당연히 세계적인 논문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조 소장은 "인간 뇌의 블랙박스로 불리는 해마와 시상ㆍ뇌간의 신경화학물질 변화는 기존 영상기기로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7T PET-MRI로 생생한 영상을 얻는데 성공했다"면서 "뇌 신경을 움직이는 화학물질의 변화 추이를 통해 뇌질환의 발전과정을 밝혀내면 우울증이나 조울증ㆍ수면장애ㆍ파킨슨병ㆍ알츠하이머병(치매) 등의 치료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고 말했다. 조 소장의 사무실 한쪽 벽면에는 여러 개의 사진 액자가 붙어있다. 그가 처음 개발한 PET를 비롯해 2Tㆍ7T MRI를 설치하는 사진이다. 마지막 액자에는 사진이 아니라 '14T'라는 글귀만 들어있다. 그의 다음 목표인 14T MRI 개발 의지를 담고 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7T MRI는 40여대가 있고 일본과 프랑스는 11.7T MRI를 개발하고 있다. 그런데 조 소장은 2009년 7T에서 중간 단계를 거치지 않고 14T로 곧장 가기로 결정했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 이제 11.7T를 개발하고 있는데 무슨 14T냐는 말도 하지만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먼저 해야 한다"면서 "그게 과학이다"라고 강조했다. 14T MRI 개발은 총 1,500억원이 투자되는 대형 프로젝트다. 이 중 500억원은 이길여 가천길재단 회장이 사재를 털어 투자하기로 했다. 1,000억원은 국비 지원을 받을 생각이다. 다음달 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가 나온다. 조 소장은 "이 회장은 뇌과학 연구를 위해 지금까지 1,000억원이 넘는 돈을 이미 투자했는데 개인이 이 같은 투자를 하기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 "14T MRI 개발은 나 자신과 연구소 차원을 넘어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투자가 결정되면 오는 2015년까지 개발을 끝낸다는 목표다. 조 소장은 매년 노벨상이 발표되는 시기에 스웨덴으로부터 전화를 기다린다는 5,000여명의 미국 학술원 회원 중 한 명이다. 노벨상에 대한 기대가 없을 리 없다. 하지만 그는 짐짓 노벨상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투로 말했다. "상을 받아서 뭐하나. 성가시기만 할 것이다. (내게) 주지도 않겠지만 관심도 없다. 만일 노벨상을 탄다면 PET 때문에 받겠지만 상을 바라고 연구한 것도 아니고 지금도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뿐이다."
◇ 테슬러(Tesla)=자장(자석)의 단위로 크로아티아 출신 미국 전기공학자 니콜라 테슬러의 성에서 따왔다. 1테슬러는 1만 가우스다. 지구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지구 자장은 0.2가우스. 7테슬러는 지구 자장에 비해 35만 배 세다. 숫자가 높을수록 발생시키는 자장이 크고 그만큼 영상의 선명도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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