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역사교과서 국정화

● 국가가 제작한 시각 강요해선 안돼

● 다양한 관점 종합,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

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정부는 오는 2018년부터 고교생이 배우는 역사교과서를 국정 발행할 것인지 국가가 심의 승인하는 검정으로 할지 이달 말 교육부가 고시하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은 물론 학계·시민단체들이 찬반 성명을 내는 등 크게 대립하고 있다. 국정교과서를 찬성하는 쪽은 민간출판사의 검정교과서에 좌편향 서술이 적지 않다며 편향된 교육을 막기 위해 국정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 측은 국정교과서가 정권의 입맛에 맞게 서술이 달라질 수 있어 일방적·획일적 교육이 우려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

찬성- 전우현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좌편향 세뇌교육 뿌리뽑는 유일한 길

● 한국사, 올바른 국가관 형성의 토대

● 역사 서술 해석자 관점 따라 다를 수 있어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현대사는 국어·영어·수학 등 다른 과목에서 집필자의 주관대로 예문을 들거나 문제연습을 시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사는 인생관·국가관·민족관을 심어주는 수단이며 대한민국, 한민족의 후세대를 인도하는 기성세대의 핵심적인 가르침에 해당된다. 적어도 대한민국 역사를 객관적으로 배워야 조국을 자랑스러워하는 국민으로 성장한다. 그래야 하나의 국가로서 대한민국이 존립할 수 있다. 조국을 자랑스러워하지 않고 북한 체제가 더 정당하다고 믿는 학생들이 매년 수십만명씩 배출된다면 대한민국은 조선이나 구한말 대한제국이 망한 것처럼 이미 망한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기아와 폭력에서 고통 받는 북녘의 불쌍한 동포를 자유 해방시키려는 민족애를 지닌 국민을 길러내는 최소한의 교육적 관점을 유지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어느 나라나 중고교생에게 가르치는 역사 교과서에는 국민 형성의 기본적인 내용이 포함되게 마련이다.

자국의 역사 교육은 한 나라의 사활을 결정하는 국가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역사전쟁에서 패배한다면 남북한의 체제전쟁, 대한민국 내부의 좌우 이념전쟁에서 이미 절반은 패배한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행 검인정 역사교과서 대부분이 근현대사의 민족 운동 중 우파운동을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고 대한민국의 정체성보다는 대한민국이 태생적으로 문제가 있는 나라가 아닌가라는 회의적인 시각을 심어주기 쉬운 내용을 다수 담고 있다고 본다. 하나의 사실(史實)은 복잡하고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데 가급적 좌파적 내용은 우호적으로 기술하고 우파적인 내용을 폄하한다면 자라나는 세대들을 좌경화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세뇌교육이 되는 것이라 우려된다.

검인정 교과서를 책임 있게 잘 집필하고 애국·애족심을 강조하는 국학(國學)으로서의 국사 교과서가 잘 만들어질 수 있다면 염려가 없지만 검인정체제 유지시 현재 사학계나 역사교육계의 집필진이 진정 애국적인 의지를 가지고 올바로 노력할지 매우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적어도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이 필요한데 현재 검인정 교과서 체제에서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검인정 체제가 교과서 선택의 자유를 준다는 반론이 있다. 그러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선택과정 등을 좌편향된 시각을 가진 역사학자·역사교육자가 주도한다면 이는 이미 학생·학부모의 자유롭고 공정한 선택이 아닐 것이다. 역사학자·역사교육자의 대부분을 좌파가 점하고 있다면 이미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지 못한 불공정한 게임에 지나지 않다. 국정교과서 체제가 최선은 아닐 테지만 현재로서는 대한민국의 수호와 남북대치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판단된다.

현행 한국사 근현대사 부분 중 좌편향된 서술의 사례 일부를 든다면 우선 물산장려운동에 대한 폄하다. 일제시대 중산층이나 자본가들의 운동이 자기네 이익만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었고 오히려 사회주의 계열이 양심적이고 민족적인 행동을 취한 것으로 묘사됐다고 볼 수 있다. 중산층과 자본가에 대한 계급적 적대의식을 주입하기 쉬운 내용인 것이다. 또 민족주의 계열의 실력양성운동 비판도 있다. 민족주의 계열의 운동이 고작 실력양성이나 주장하면서 타협적이고 무기력한, 그리고 효과 없는 운동에 불과한 것처럼 묘사한다. 은근히 지주·자본가, 민족주의 계열에 대한 적대감을 일으킬 수 있는 왜곡이다. 반대로 사회주의 계열 운동에 대한 호의적 서술은 많다. 이승만 등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거의 없고 대신 이승만의 정적이었던 조봉암과 진보당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승만 독재와 장기집권을 비판하면서 대조적으로 북한의 장기집권, 독재에 대해서는 거의 비판이 없는 것도 문제다. 2000년 이후 북한의 3대 세습과 정치범 수용소, 인권억압 등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거나 간단하게 설명했다. 더욱이 북한의 천안함 공격, 연평도 포격에 대해 서술하지 않고 후진국형 절대적 가난에서 벗어나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룬 대한민국의 눈부신 발전에 대해서는 매우 인색하게 평가했다.


현실이 이러할진대 현행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대로 어린 영혼들을 가르쳐도 좋을지 의문이다. 국정 교과서 외에 대안이 있는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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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오동석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권 입맛 따라 사고력 획일화 하는 꼴

● 검인정 교과서 대부분 우파 의도적 폄하

●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각 필요


교과서 국정제(國定制)는 국가가 직접 저작하거나 위탁해 제작한 교과서만을 인정하는 교과서 국가독점제도다. 지난 1992년 11월 헌법재판소는 중학교 국어교과서의 국정제를 위헌으로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교과서의 내용에도 학설의 대립이 있고 어느 한쪽의 학설을 택하는 데 문제점이 있는 경우, 예컨대 국사(한국사)의 경우 어떤 학설이 옳다고 확정할 수 없고 다양한 견해가 나름대로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는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사실과 관점은 다르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와 악의적인 왜곡은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역사 서술은 자명해 보이는 사실조차도 해석자의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기에 학생들은 다양한 견해를 접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스로 판단하고 교사 또는 동료들과 토론하면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갖출 수 있는 기회와 환경이 필요하다.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에서 교과서는 막강한 위력을 발휘한다. 다른 관점을 배제하고 국가가 제작한 오로지 하나의 시각으로 역사를 재단할 우려가 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국가의 교과서 독점이 초래하는 문제점에 대해 우선 학생들의 사고력을 획일화·정형화하기 쉽고 다양한 사고방식의 개발을 억제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양한 사고방식을 수용할 수 있도록 교과서 발행제도를 개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덧붙여 국가가 직접 관여하면 편리하고 효과적일 수 있겠지만 현상 유지를 바라는 관료적 타성에서 기인하는 교과서의 경직성을 쉽사리 시정하거나 극복하기 어렵고 고위관료나 정치가들의 견해나 영향이 강하게 작용한 경우에는 더욱 어렵다고 밝혔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이념과 모순하거나 역행하는 것이라고도 봤다. 국정교과서는 교사와 학생의 교재선택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그 결과 교과용 도서의 개발이 지연되거나 침체될 우려가 있다. 헌재는 우리 사회의 폭넓은 생활 수준의 향상과 보다 양질의 교육문화를 향수하고자 하는 국민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가 더 이상 교과서를 독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보였다.

교과서 중심의 주입식 교육 내지 암기식 교육을 행하기 쉽다. 교과서를 국가가 독점하면 교과서의 내용에 수록한 것은 무조건 정당한 것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또 강조할 것이기 때문이다. 학생 스스로 연구해 정답을 찾아내는 기풍을 진작할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국정제도보다는 검인정제도를, 검인정제도보다는 자유발행제를 채택하는 것이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의 이념을 고양하고 아울러 교육의 질을 제고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다만 국가는 수학권의 보호와 사회공공의 이익 증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범위 내에서 교육내용에 대한 결정권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콕 집어서 지적했다.

헌법재판소를 인용한 까닭은 그 권위에 편승하고자 함이 아니다. 필자는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대한 합헌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관점에서 교과서 국정제에 대해 적정한 논거에 따라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생각한다. 결정문을 거의 직접 인용한 까닭은 '왜곡'의 오해를 피하고자 함이었다. 결정문 그대로 따온 것은 아니기에 미묘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직접 읽어보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입장을 정확하게 아는 길이다. 그러나 그조차 읽는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다를 수 있다. 주관적인 해석의 편향성을 벗어나는 길은 다른 사람과 토론을 하면서 해석의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찾아내고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는 길뿐이다.

시민의식의 성숙함을 신뢰한다면 또한 성숙할 기회를 갖고자 한다면 한국사 교과서를 오히려 자유발행제로 가는 게 마땅하다.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면 그것을 지적하고 고치도록 요구해야 한다. 균형감을 상실한 교과서가 있다면 어떤 점에서 편향인지 시민사회에서 토론하자. 물론 평화적·논리적이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 과정이야말로 올바른 역사적 관점을 찾아가는 길이자 그 자체로 모든 시민을 위한 역사교육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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