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자신의 임기 중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를 끝냄에 따라 관심은 이제 차기 중앙은행 수장 자리에 누가 오르느냐에 모아지고 있다. 차기 총재는 이 총재가 넘겨준 금리인상의 키를 실행할 시점을 결정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다.
때문에 국가 원로들과 전문가들은 어느 때보다 후임 총재가 갖춰야 할 조건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요구하고 있다.
조순 전 경제부총리는 이날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차기 총재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금융시장의 안정을 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조 전 부총리는 "한국 경제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이 계속 바뀌어왔다"며 "과거에는 통화가치의 안정이 꼽혔다면 이후 금융 질서와 금융 전체의 안정이 중요시됐고 최근 금융위기 이후에는 한은도 정부와 협력해 위기국면에서 나라를 구하는 데 동참하는 역할이 요구됐다"고 설명했다.
조 전 부총리는 "조금 지나면 출구전략이 채택될 것이고 이 경우 경제의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정'이 될 것"이라며 "물가와 통화량 공급, 금융질서, 외환과 자본시장의 안정 등 경제 전반의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차기 총재의 중요한 덕목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소신'과 '균형'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점도 지적됐다. 이 총재와 함께 일했던 이승일 전 한은 부총재는 전문성과 리더십 못지않게 "중앙은행의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소신이 필요하다"며 "그러면서도 정부와의 균형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킬 소신이 필요하지만 소신만을 고집할 경우 고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계 금융기관 역시 차기 한은 총재에 대한 기대가 남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외국계 증권사의 고위임원은 "한국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뒤떨어진 상황"이라며 "이번 한은 총재 임명은 한국 정부가 중앙은행의 위상을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현재 거론되고 있는 후보 중 포지션이 노출돼 있는, 즉 통화정책의 철학이 지나치게 노출된 사람은 곤란하다"며 "이 경우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차기 총재의 내정 발표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에도 후보군이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시장에서 여전히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사람만도 5~6명에 이른다.
가능성이 예전보다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이 여전히 강력한 후보이고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받고 있는 김중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와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겸 대통령 경제특보 역시 '3강' 대열을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에는 박영철 고려대 교수와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윤병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도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