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선진 한국의 길' 기본으로 돌아가자] '사회협약의 나라' 아일랜드

'노·사·정 대타협' 통해 세금 낮추고 분규 자제<br>10년만에 富國 탈바꿈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의 오코넬 거리에 가면 아일랜드 해방 투쟁을 이끌었던 다니엘 오코넬의 동상과 312m에 달하는 ‘더블린 스파이어’ 탑이 나란히 서 있다. 바로 아일랜드의 어제와 오늘을 말해주는 두개의 상징물이다. ‘아일랜드의 정신(Sprit of Ireland)’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더블린 스파이어 탑은 아일랜드 정부가 영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먼저 넘어선 것을 자축해 지난 2003년 3월에 세워졌다. 서유럽 최빈국이던 아일랜드가 경제성장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지 불과 10년만에 영국을 제쳤다는 자부심이 바늘처럼 솟구친 모양으로 형상화돼 있다. 80년대 중반까지 ‘서유럽의 지진아’로 불리던 아일랜드가 영국을 앞질러 국민소득 3만달러를 달성한 원동력을 무엇일까. 이 물음에 대해 지난 21일 한국을 찾은 메리 매컬리스 아일랜드 대통령은 주저없이 ‘사회협약’을 꼽았다. 아일랜드는 1652년 영국에 정복된 후 1930년 독립할 때까지 ‘하얀 깜둥이의 나라’, ‘낙오자의 나라’라는 멸시를 받았다. 19세기 중반에는 ‘감자마름병’이 돌며 대기근이 발생, 인구의 4분의 1이 죽고 5분의 1이 해외로 떠나는 아픈 과거도 지니고 있다. ‘토끼풀의 나라’라는 별칭처럼 산업혁명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한 아일랜드는 낙농ㆍ섬유ㆍ유리 등으로 근근히 버텨왔었다. 지난 1987년에는 인플레이션이 20%가 넘고 국고의 130%가 넘는 국가부채에다 17%에 달하는 실업률을 기록하는 최악의 위기를 맞았었다. 헐벗고 굶주린 아이리시들이 또 다시 미국ㆍ영국ㆍ호주 등으로 떠난 것은 당연한 수순. 자성의 목소리는 정치권에서부터 시작해 노동자ㆍ기업으로 확산됐다. 먼저 야당이 정부의 국가경제부흥프로그램에 동의하고 20년 동안 연평균 58만5,102일(개별사업장의 파업일수 합산)을 파업으로 날린 노조도 ‘기본으로 돌아가’ 국가경제 살리기에 동참했다. 87년 2~10월까지 장장 9개월의 협상을 거쳐 아일랜드는 사회연대협약(Social Parternership Aggrement)을 탄생시켰다. 임금인상을 3년간 2.5%를 묶고 법인세율과 소득세율을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사회협약을 통해 노조는 노사분규와 임금인상을 억제하는 대신 정부는 세제혜택으로 실질임금이 줄지 않도록 하고 기업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사회협약 이후 아일랜드 경제는 급속히 안정을 되찾았다. 1995~2000년까지 아일랜드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9.9%. EU평균 경제성장률의 3배를 넘었다. 국가채무도 국고의 50%로 뚝 떨어졌고 실업률은 3.9%로 낮아졌다. 87년 1만달러에도 못 미쳤던 1인당 국민소득은 불과 8년만에 2만달러를 넘어섰고 2001년 3만1,000달러를 넘어서며 오랜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영국(2만4,000달러)을 앞질렀다. 88월 1월 아일랜드를 “천연자원도 산업유산도 없는 나라가 과소비에 빠져 서유럽 최빈국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고 혹평했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그로부터 만10년이 채 안된 97년 5월 ‘아일랜드 빛을 발한다’는 제목으로 ‘리피강의 기적’을 극찬했다. 사회협약과 함께 아일랜드의 성장을 이끈 것은 ‘외국인 투자’다. 더블린 윌튼 플레이스가(街)에 위치한 IDA아일랜드(아일랜드산업개발청)에 들어서면 “우리 없이 어떻게 일합니까(How do you manage without us)”라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300명에 달하는 전문인력의 원-스톱 서비스는 IBMㆍ인텔ㆍ델 등 전세계 IT기업의 서유럽 전초기지를 아일랜드에 위치하게 만들었다. 인텔 더블린 공장 관계자는 “45억달러를 추가로 투자해 300mm웨이퍼의 반도체를 생산하는 세계 4번째 공장을 만들었다”며 “10%에 불과한 법인세, 수준 높은 엔지니어링 인력이 아일랜드의 매력” 이라고 말했다. 현재 아일랜드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우리나라의 새한미디어를 포함해 2,000여개에 달한다. 외국기업은 아일랜드 총생산의 35%를 차지하며, 14만명에 이르는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새한미디어의 슬라이고 공장을 위해 다리와 도로를 새로 만들었다는 포릭 화이트 전 산업개발청장은 “외국기업이 90%의 이익을 가져간다면 우리는 일자리를 만들어 이익을 보고 있다”며 아일랜드의 외국기업 유치전략을 요약했다. 정치에서 경제를 독립시켜 3년마다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는 아일랜드의 사회협약은 2003년 3월 ‘지속적인 진보’라는 주제의 신사회협약을 발표했다. 동유럽의 도전을 받고 있는 제조업에서 벗어나 ITㆍ생명공학ㆍ금융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약을 일궈내겠다는 것이다. 이미 40만평의 ‘내셔날 디지털 파크’를 조성했고 250만km에 달하는 해저광케이블만을 구축, 유럽 디지털 통신의 허브국가로 성장하겠다는 전략이다. 10년 만에 일궈낸 리피강의 기적은 이제 각 경제주체들의 ‘기본 지키기’에 힘입어 산업고도화라는 또 한차례 성장기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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