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자의 눈] 은행 '격세지탄'

은행원들 입에서 넋두리가 끊이지 않는다.얼마전 만난 시중은행의 한 차장의 말. 『내가 입행한 70년대만 하더라도 정말 괜찮았지. 업체에 대출 한번 해주면 수십만원은 기본으로 싸들고 오지, 매일 저녁 선배들 따라다니며 술접대 받지, 술마시고 집에 갈 때면 택시비가 2,000원인데 선배들이 차비하라며 5만원은 쥐어주지…』 『그 땐 지점장들은 아예 볼 수도 없었어. 차장들은 아침 내내 신문보다가 점심 반주 한잔 걸치고 와서는 오후 내내 낮잠 자다가 퇴근하고, 지점장들은 어디서 뭘하는지 아예 얼굴도 보이지 않더라구. 나도 차장 되면 그렇게 속편하게 살 수 있을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이야…』 외국인 경영자가 들어왔거나 들어올 예정인 몇몇 은행에선 『이 나이에 무슨 영어 공부냐』는 푸념도 들린다. 시중은행의 한 고참 부장은 『연봉제가 시작되면 영어도 못 한다고 퇴출될게 뻔하고, 기를 쓰고 배우자니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며 『정말 죽겠다』고 하소연한다. 옛날은 참 좋았다. 일도 적었고, 월급도 넉넉한데다 이리저리 돈도 생기고, 한번 입행하면 정년까진 직장이 보장됐고, 자기계발도 필요 없었나보다. 그런 「태평세월」을 누리다가 지난해 몇몇 은행은 망했다. 몇몇은 외국에 팔리거나 합병되는 등 대부분 호된 곤욕을 치루고, 변신을 다짐했다. 『돈 받고 대출해줄 때가 언제라고, 이제는 대출세일하느라 지점장들이 업체로 대출 섭외까지 다닌다니 기가 막힌 노릇이지. 직원들은 툭하면 야근에 밤샘까지 하는데 작년에는 월급까지 깎였지, 툭하면 은행 잘못한다고 두들겨 맞지, 올해는 연봉제까지 도입한다니 언제 쫓겨날지 알 수도 없지. 이젠 은행원돼서 좋은 일이 하나도 없어. 느슨하게 살 때가 좋았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가 시작된지 1년이 훨씬 넘었다. 각 은행들이 새 마음가짐으로 새 시대를 맞이한다며 온갖 행사를 열고 홍보를 했지만, 많은 은행원들은 아직도 「대출해주면 주머니가 두둑해지던」 옛날 그 시절을 뒤돌아보며 자기 연민에 사로 잡혀있다. 이젠 앞을 바라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KLS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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