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걸스데이


"우리나라 대통령도 이제 여자분이신데 뭐가 그렇게 심각해, 왜 안 돼, 여자가 먼저 키스하면 잡혀가는 건가?" 올 한해를 뜨겁게 달군 여성그룹 걸스데이의 '여자대통령' 가사다.

사랑에 당당하게 나서라며 여성들을 응원하는 메시지와 함께 선보인 '구미호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노래가 인기를 끌면서 걸스데이는 국제아동 후원단체의 홍보대사로 위촉돼 개발도상국 여자아이들을 위한 '여자대통령'으로서 활동하기도 했다. 뽀로로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어린이 대통령'으로 활약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만드는 장면이기도 하다.

독일에도 '걸스데이(Girls' Day)'의 인기가 대단하다. 독일의 걸스데이는 초중고·대학교 여학생들을 기업·대학·연구소 등에 초대해서 실제 작업장을 보여주고 함께 일하면서 기술과 연구과정을 체험케 하는 행사다. 한국의 걸스데이가 해외 봉사활동을 통해 'K팝'의 위상을 더욱 높이고 있다면 독일의 걸스데이는 여학생들을 '기술'과 '연구소'의 매력에 빠지게 한다는 점이 다르다.


독일의 기업·대학·연구소 등 현장은 매년 4월 넷째주 목요일이 되면 여학생들의 재잘거림과 탄성·환호로 북적인다. 직업의 세계에서 남녀의 역할 구분이 사라지는 추세이긴 하지만 남성이 지배하고 있는 기술과 이공계 분야는 여전히 유리천장(glass ceiling)이 남아 있다. 독일에서는 이런 행사를 통해 여학생들이 그간 고려하지 않았던 장래의 직업 분야에 대해 관심갖게 하고 재능을 발견하게 한다.독일의 걸스데이는 여학생들에게 기술 분야 직업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줄 뿐만 아니라 이들이 기업이 원하는 인력으로 자라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실제로 걸스데이에 참여한 여학생 중에는 본인이 직접 체험한 기업이나 연구소의 인턴십 등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걸스데이 2회 이상 참여기관의 60%가 걸스데이 참여경험이 있는 여학생을 인턴이나 견습생으로 채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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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첫해 40개 기업에 2,000여명의 여학생이 참여하던 걸스데이는 2013년 현재 9,500여 기업·기관에 10만8,000여명의 여학생이 참여할 만큼 큰 성과를 보이고 있다. 또 이와 유사한 활동들이 유럽뿐만 아니라 전세계 16개 국가들에서 열리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여성의 산업현장 연구개발(R&D) 참여를 본격화하기 위해 정부 관계부처 합동으로 이공계 여성을 산업현장의 핵심 R&D 인력으로 확충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지원에 나서고 있다. 창의적 사고와 융합이 강조되는 '창조경제'시대에 여성의 유연하고 창의적인 능력을 산업현장에서 적극 활용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컨설팅회사 맥킨지도 '제2차 한국보고서 신성장공식' 연구분석자료에서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여성인력의 적극적인 경제활동 참여가 꼭 필요하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돌아보면 여학생의 공학계열 진학은 여전히 저조하며 여성의 R&D 참여 비중도 독일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해 낮은 상황이다. 특히 기업의 여성연구원 비중은 대학·공공연구소에 비해 현저히 낮다. 업종별로도 차이가 심해 섬유·반도체·가전제품 등의 여성 R&D 인력 비중은 높은 반면 자동차·기계·철강 등은 드물다.

아직 늦지 않았다. 이제라도 여학생들이 기술에 매력을 느끼고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응원해야 한다. 마침 내년 5월 초 한국형 걸스데이가 열릴 예정이다. 정부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기업·대학·연구소의 적극적인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 가까운 미래 '기술강국' 한국을 주도할 여학생들의 당찬 도전과 아름다운 열정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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