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기고] 소니 신화와 한국기업

그의 집안은 수백명의 하인을 거느린 대부호였고, 그는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야 할 맏아들이었다. 전쟁이 끝난뒤 그는 이부카씨를 데리고 부친을 찾아갔다. 예상과는 달리 부친은 선뜻 아들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도록 허락해 주었다. 두 사람은 그 날 모임을 「미지의 개척자」라고 명명했다. 폭격으로 페허화한 건물에 책상 하나를 갖다놓고 생전 보지도 못한 녹음기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그들은 가느다란 철사에 녹음시키는 데까지는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녹음된 것을 편집하려면 철사를 잘라내고 떼워야 하는데 떼우는 부위에서 음이 파괴됐다. 바로 그때 맥아더 사령부에서 확성기 음이 퍼져나왔다. 그는 사령부로 달려가 미군 장교를 졸라 녹음기를 몇 시간 빌릴 수 있었다. 녹음 매체는 철사가 아니라 테이프였다. 테이프를 만드는 회사는 일본에 없었다. 두꺼운 곽을 길게 오려서 거기에 자석가루를 칠했다. 녹음기는 만들어졌지만 덩치가 크고 조잡하여 상품가치가 없었다. 그러나 이 무모한 노력이 기술에 대한 소화력을 길러주었다. 그들의 두번째 목표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드는 일이었다. 라디오를 가장 먼저 만든 회사는 미국 TI사 였다. 당시의 라디오는 진공관식으로, 넓은 응접실을 장식하는 커다란 가구로 취급되고 있었다. 라디오는 가구라는 고정관념에 젖어온 미국인들은 1948년에 트랜지스터를 만들어 내고도 소형 라디오를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1955년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만든 모리타는 이를 팔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미국인들은 미국 밖에서 만들어진 상품을 매우 경시했다. 소니 라디오 역시 미국의 유통망에서 받아주지 않았다. 그는 『문제가 있는 곳엔 반드시 해결책이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3일만의 몰두 끝에 유통망을 통하지 않고도 고객에게 상품의 존재를 알리는 방법을 찾아냈다. 이것이 신문광고였다. 브로바사가 20만개의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주문해 왔다. 라디오에 브로바 이름을 새겨달라는 조건이었다. 이는 소니사엔 횡재였다. 모리타는 본사에 이 사실을 보고했다. 본사에서는 즉시 주문을 수락하라고 했다. 그러나 모리타씨는 하룻밤을 꼬박 새운후 이를 거절하기로 결심했다. 가장 놀란 사람은 브로바사 중역이었다. 『브로바사는 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소니사 제품에 브로바 로고를 넣는 것이 얼마나 횡재인지 아십니까?』 이에 모리타씨가 당당히 말했다. 『브로바사도 50년전에는 소니와 같은 누추한 처지에서 출발했을 것입니다. 브로바사가 50년만에 오늘과 같은 기업을 일으켰다면 앞으로 50년후에 소니사도 그만큼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소니 제품은 소니의 이름으로만 팔 것입니다.』 결국 모리타는 장래의 이미지를 위해 엄청난 단기이익을 포기했다. 그후 불과 20여년 만에 이 두개 회사의 프로필은 완전히 역전됐다. 그는 자신의 직위를 걸고 워크맨을 만들었다. 만들자 마자 3,000만개가 팔려나갔다. 그는 새로운 상품에 대해서도 남다른 혜안을 가지고 있었지만 경영과 마케팅에도 귀재였다. 그는 일생의 파트너인 이부카 회장을 깍듯이 존중해 주었고, 제3대 회장 자리는 오가에게 넘겨주었다. 그가 오가라는 젊은 음악학도를 끈질기게 설득하여 소니사로 데려온 과정은 매우 감동적이다. 당시 학생이었던 오가는 우연한 기회에 라디오의 음질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모리타씨는 그 학생의 예리한 직관을 높이 샀다. 그를 소니사로 데려오려 했지만 오가는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유학을 떠났다. 모리타는 빈에까지 그 청년을 몇번씩이나 찾아가 인간적인 신뢰를 쌓았다. 오가는 귀국하여 무대에서 활동했다. 그를 끈질기게 설득시켜 마침내 소니사로 데려왔다. 그가 지금의 3대째 회장이다. 그런데 오가 역시 데이라는 사람을 차기 회장감으로 기르고 있다. 소니사는 대대로 가족에게 넘겨지는 그런 회사가 아니다. 남의 상품을 복사하여 비싸게 팔고, 은행돈을 떼어먹고, 재산을 자식에게 편법으로 물려주는 한국 재벌들이 참 초라해 보인다. 아니 이 한사람 앞에서 우리 국민 전체가 초라해 보인다. 池萬元(사회발전 시스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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