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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맞은 화랑가가 참신하고 다양한 기획전으로 미술 애호가들을 유혹하고 있다. 특히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아우르는 기획전은 불황으로 발길이 뜸했던 컬렉터들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하다. 또 대형화랑이 기획한 미술관급의 대규모 전시들인데다 생각하는 재미와 보는 재미를 동시에 누릴 수 있어 일반 관람객의 발길이 몰릴 전망이다. 먼저 갤러리현대 강남점에서는 정물화를 한데 모은 ‘사물의 대화법’전이 한창이다. 정물화는 삶의 기록인 동시에 눈에 보이는 이미지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화가들의 도전 영역이었고 인생무상의 사상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현대미술에서 정물화가 차지하는 역할을 22명의 작가를 통해 보여준다. 버려진 비누를 찍은 구본창, 소금결정으로 무늬를 만들어 촬영한 김시연의 작품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담고 있다. 결이 살아있는 나무판에 단청방식으로 이불을 그린 김덕용과 구리선으로 가방과 신발을 만든 정광호는 잡히지 않는 온기를 전한다. 이 시대의 허무를 그리는 황순일과 김기라, 책을 소재로 삼더라도 황용진ㆍ배준성ㆍ홍경택ㆍ황선태ㆍ김성호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다. 전시는 29일까지. (02)519-0800 사간동 갤러리 현대는 작가의 진지한 손길에 초점을 맞춘 ‘손길의 흔적’전을 12일부터 4월5일까지 연다. 향으로 종이를 지져 점묘기법으로 형태를 만드는 이길우는 고전 명화에 등장하는 여인들을 되살려 놨다. 쌀ㆍ콩ㆍ큐빅ㆍ알약 등 작은 알갱이를 붙여 인물화를 그리는 이동재, 크리스탈과 레고블록 등으로 산수화를 표현하는 황인기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대리석을 자르고 갈아 풍경을 그린 정광식 외에 싸리나무를 촘촘히 박은 심수구, 자개를 붙인 김유선, 주사기로 물감을 짜 그리는 윤종석, 스테플러 철침으로 구조물을 만드는 김정주, 스팽글을 비늘처럼 박아놓은 노상균 등 재료도 제각각이다. 수많은 짧은 구리선을 용접해 기하학적 조형물을 만드는 존 배의 작품은 구도자의 손으로 빚은 명상의 산물인 듯하다. 신성희ㆍ전광영 등 20~70대 작가 17명이 참여했다. (02)2287-3500 청담동 가나아트 강남점의 ‘장자 그리고 나비’전은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 일화에 담긴 도가(道家)적 주제를 내세워 외연은 유사하지만 그 실체는 전혀 다른 작품들을 통해 실체와 허구의 간극을 짚어 본다. 박제된 나비를 캔버스에 붙인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과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날아오르는 나비를 그린 고영훈의 그림을 보면 어느 것이 진짜 나비이며 나비의 본성인지 생각케 된다. 시점에 따라 형태가 다르게 보이는 박선기의 조각 ‘의자’와 혁신적인 가구 디자이너로서 조각 같은 의자를 만드는 론 아라드의 작품도 한참동안 시선을 잡아 둔다. 김남표와 이정웅, 김강용과 김춘환 등 8명 작가의 작품 20여점이 전시된다. 12일부터 4월5일까지. (02)512-16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