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과 이라크 추가파병 동의안 처리가 무산된 9일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보인 행태에 대해 여론은 물론 당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홍사덕 총무는 10일 “어제는 정말 면목 없는 하루였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소장파를 중심으로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다”는 자성과 지도부의 무능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특히 국가적 중대 현안은 처리하지 않으면서 서청원 전 대표 석방요구 결의안을 기습 통과시켜 “후안무치한 당리당략적 구태정치의 극치”라는 비난을 자초한 데 대해서는 “총선을 어떻게 치르라는 말이냐”는 분노 섞인 반응이 나왔다. 남경필 의원은 “당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질렀다”고 잘라 말했다.
근본 문제는 최병렬 대표 등 지도부의 안일한 대응에 있다는 지적이다. 최 대표는 “9일 두 동의안을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를 위한 농촌 의원 설득 등 노력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본회의에서 FTA에 대한 농촌 의원들의 반발은 여전했고, 일부 도시 의원까지 반대 표를 던질 기세였다. 그러자 지도부는 “분위기가 이상하니 표결을 연기하자”며 꽁무니를 빼기에 급급했다.
서 전 대표 석방요구안 처리과정도 마찬가지다. 지도부는 당초 구속된 다른 의원들과의 형평성과 여론을 감안해 상정을 유보키로 했으나 소속 의원 31명이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 상정을 강행하자 그대로 끌려 갔다.
지도부가 통제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박진 대변인은 “당정조율 운운하며 파병안의 상정을 무산시킨 열린우리당의 작태는 집권당이기를 포기한 무책임의 극치”라고 초점을 흐리며 남의 탓을 했다.
<유성식 기자 ssyoo@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