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9월 26일] 미국식 금융시스템의 몰락?

2008년 9월은 미국 금융역사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미국 금융파워의 상징으로 여겨져온 대형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파산위기에 직면하면서 미국 금융시스템이 뿌리째 흔들렸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식 금융시스템의 붕괴나 투자은행 모델의 실패를 주장하기도 한다. 탈규제ㆍ시장경쟁을 옹호하고 고위험ㆍ고수익 투자를 추구해온 결과 투기가 횡행해 자산거품과 부실이 누적돼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금융위기를 계기로 실패한 미국식 금융시스템 또는 투자은행 모델에 대한 성찰과 함께 자본시장통합법 등이 추구하는 금융발전 전략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 금융위기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고 앞으로 큰 변화를 초래할 것은 분명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미국의 모기지 부실 사태는 지난 1980~1990년대의 일본 부동산 버블 붕괴와 자주 비교된다. 부동산 버블의 형성과 붕괴, 그로 인한 파장 등에서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본시장 중심형인 미국과 달리 일본은 은행 중심의 금융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성격이 다른 금융시스템을 가진 국가에서 유사한 형태로 버블이 형성되고 붕괴했다는 사실은 이번 미국 금융위기의 원인이 금융시스템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국의 사례에서 가장 큰 공통점은 금융시스템이 아니라 과도한 통화완화정책이다. 일본은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의 평가절상에 대응해 경기부양을 위해 저금리정책을 실시했고 미국도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저금리정책을 장기간 지속했다. 이로 인한 과잉유동성이 부동산 버블의 근본적 원인이다. 따라서 일본의 부동산 버블이 붕괴했을 때 일본식 금융시스템의 종말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지금도 굳이 서둘러 미국식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예언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면 투자은행 모델은 어떤가. 투자은행은 예금과 대출을 통해 자금을 중개하는 상업은행과 달리 투자자와 기업의 직접금융을 중개하는 업무를 본령으로 한다.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금융시장에서 자본시장의 역할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투자은행 모델은 반드시 필요하다. 레버리지를 이용한 자기자본투자를 확대하면서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문제지만 고위험ㆍ고수익 투자 그 자체를 죄악시해서는 안된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에서도 하이일드펀드 등을 만들었듯이 고위험ㆍ고수익 투자는 다양한 수익-위험 조합의 상품이 존재하는 금융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기자본 투자를 선도해온 골드만삭스가 상대적으로 위기에 가장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리스크관리의 성패가 각 투자은행의 운명을 갈랐다는 것을 시사한다. 미국 금융산업의 판도는 크게 변할 것이다. 하지만 변화는 투자은행의 몰락이 아니라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결합이 이끌 것이다. 미국 투자은행은 상업은행과 결합해 더욱 강력한 자금조달 기반과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지게 됐기 때문이다. JP모건체이스나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등 대형 상업은행이 투자은행을 인수한 것도 양자의 시너지효과를 기대했기 때문이지 단순히 실패한 투자은행을 구제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투자은행 사업은 당분간 위축되겠지만 체력을 회복한 후에는 다시 세계 금융의 주요 플레이어로 복귀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욱 강한 모습으로 말이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잘못된 정책이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갈 수도 있고 아무리 큰 대형 금융기관이라도 리스크 관리가 잘못되고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시스템 리스크를 촉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 육성을 위한 장기 로드맵에서 반드시 유념하고 보완해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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