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국제금융시장 혼란기 원화 강세 왜] 1. 통화정책 차이… 2. 경상흑자 많고… 3. '신흥국의 스위스' 평가도 한몫

"원·엔환율 추가하락 막자"… 당국 엔화와 연동도 영향

원高 장기화땐 수출 타격… 통화완화 정책 서둘러야



원화는 국제금융시장이 혼란에 휩싸일 때마다 어김없이 약세였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처음 언급한 게 단적인 예다. 지난 2013년 5월23일 우리 원화가치는 달러당 14원70전(1.3%) 급락했다. 이 여파로 6월 평균 원화가치도 5월보다 2.2% 하락됐다. 안전자산이 각광받으며 투자자들이 원화 자산을 투매한 탓이다.

하지만 최근 이런 경향이 180도 바뀌고 있다. 지난달 15일 스위스중앙은행(SNB)이 고정환율제를 전격 폐지하자 전 세계 주식시장은 요동쳤고 안전자산인 미 국채와 달러, 엔화가치가 급등했다. 예전 공식대로라면 원화는 가파른 약세를 보여야 했지만 오히려 장중 11원20전이나 급등했다.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우려, 국제유가의 계속되는 하락세 등으로 1월 뉴욕 다우지수가 전월보다 3.7% 하락마감 했음에도 원화는 절상됐다.

더욱이 지난해 전산업생산 증가율은 2000년 통계 작성 후 가장 저조했고 4·4분기 경제성장률도 전 분기 대비 0.4%에 그치는 등 국내 경제 펀더멘털은 휘청이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원화는 강세다.


왜 그럴까. 크게 세 가지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먼저 통화정책의 차이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경쟁적으로 돈을 푸는 반면 우리는 막대한 가계부채와 금리 인하에 따른 효과가 크지 않다는 이유로 소극적이다. 세계 각지에서 풀려난 유동성은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고 손실 위험도 적은 우리나라로 몰리고 있다. 김정식 한국경제학회장은 "주요 국가들의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는 반면 한국은 그렇지 않아 원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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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의 안전자산 성향이 강해진 것도 이유다. 대표적인 거시건전성 지표인 외환보유액과 경상흑자가 막대해 글로벌 투자은행(IB)의 신흥국 부문 트레이더들이 원화를 사들인다는 것이다. '신흥국의 스위스'가 됐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국제유가 급락으로 경상흑자가 더 불어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원화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유가가 급락하니까 경상흑자가 늘어나 외환시장에 달러가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환율 절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부 기관들은 올해 우리 경상흑자의 흑자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외환시장의 큰손인 당국이 원·엔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원화와 엔화가치를 연동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국제금융시장 혼란기에 원화는 엔화를 따라 강세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원화가 계속해서 나 홀로 강세를 보이면 우리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한은의 한 고위 관계자는 "국제금융시장 불안으로 우리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것보다 수출 등 실물경제가 타격을 받는 것이 더 걱정"이라며 "과거에는 국제경제가 안 좋아지면 환율이 상승해 그나마 수출이 입는 타격을 상쇄했는데 지금은 원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환율효과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지적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우리는 고환율 정책을 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기침체에도 수출이 선방했지만 이제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로 우리도 금리 인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 학회장은 "지난 몇 년간 구조개혁을 하다 최근 대대적인 양적완화에 돌입한 유럽의 사례를 주의 깊게 봐야 한다"며 "구조개혁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완화적 통화정책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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