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9월 12일] 콩 한 쪽도 나눠먹는 사이

지난 9일 오전11시30분. 홍석우 중소기업청장이 명동 은행회관 뱅커스클럽에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 9명과 마주 앉았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6개월 만에, 중소기업청장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처음으로 대기업 CEO를 초청한 자리였다. 직장 폐쇄 문제로 불참한 효성을 제외한 9개 초청기업이 전부 참가했고 특히 CJ, 포스코, 금호건설, 볼보그룹 코리아는 부사장이 아닌 사장이 직접 나오는 성의까지 보였다. 홍 청장의 첫 마디는 조심스러웠다. 그는 “지금까지 상생노력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CEO의 상생의지를 의심하지 않는다”며 말문을 열었다. 본론에 해당되는 부탁 사항을 열거하는 중간 중간에는 “오늘은 특별한 요구사항이 있는 게 아니고 편안하게 부담 없이 말하는 자리”라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하지만 참석자들의 표정은 사진촬영 때를 빼고는 경직돼보였다. 기자들을 물리길 요청한 대기업 CEO들은 다양한 중소기업 지원책을 펼치고 있거나 앞으로 그럴 계획이며 중소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뿌리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요지의 비슷한 발언을 돌아가며 했다고 전한다. 민감한 주제에 대한 입씨름도 없었고 앞으로 정례적인 만남을 갖자는 것 말고는 딱히 합의가 도출된 것도 없었다. 6개월 만에 만나 겉도는 얘기를 나눈 뒤 6개월 뒤에 다시 만나자는 합의(?)만 하고 헤어진 셈이다. 국내 제조 중소기업 80%가 대기업의 영향권 아래에 놓인 하청업체다. 석유화학 대기업들이 항상 가격을 1~3달 뒤늦게 통보하는 관행에 항의, 하청업체들이 국세청에 질의서를 내고 주물업계가 납품단가 연동제 입법운동을 벌리는 등 중소기업들은 하루하루 대기업과 부대끼며 힘들게 지내고 있다. 금리가 치솟고 환율이 출렁거리며 한계가 목까지 차오른 판국인데 정작 상생협력을 말하는 자리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상생인지, 중소기업청과 대기업의 상생인지도 애매모호하게 돼버렸다는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콩 한 쪽도 아껴먹으며 버텨야 하는 불경기 중 불경기다. 회의장이 아닌 현장에서 상생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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