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죄송합니다. 오늘부로 회사를 퇴사하려고 합니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날아든 메시지 한 통. 문자도 아니고 카카오톡 장문 메시지로 날아든 직원의 사직서였습니다. 순간 뒷목이 뻣뻣해져 오는 것을 느낍니다. 며칠째 야근을 계속하던 탓에 체력은 바닥난 상태. 침침한 눈을 비비며 여러 차례 메시지를 읽어봅니다. 한숨이 절로 나오지만 당장 직원부터 충원해야한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퇴사하는 이에게 야속한 마음을 품을 여유조차 없는 그런 새벽. 사무실 문을 열고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두통이 심하게 몰려옵니다. 속으로 혼잣말로 중얼거립니다.
‘아 진짜 미쳐버리겠네...’
사업을 시작한 분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것입니다. 직원 관리는 물론이고 자금과 거래처 관리 등 챙겨야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일은 해도 끝이 없고 주말에도 수시로 업무를 챙겨야하는 통에 스트레스 관리는 엄두도 못 냅니다. 주말에 잠이라도 충분히 잤으면 하는 바람일 뿐입니다. 이번 주에는 스타트업 기업가의 스트레스 관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경험이 일천한 제가 감히 조언을 드리려는 게 아니라, 선배 경영인과 전문가에게 귀동냥으로 얻은 노하우를 소개할까 합니다.
◇“사업 오래하려면 무뎌져라!”
스트레스는 만병의 주된 원인.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있을까요? 허나 사업가는 평범한 직장인 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업무강도가 높고 수많은 사람과 상대해야 하고, 금전적인 문제로 궁지에 몰리기도 합니다. 당연히 창업의 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선배 경영인은 “안 대표 얼굴 너무 까칠한데, 사업한다고 고생스럽지. 그런데 일 계속하려면 좀 무뎌질 필요가 있어, 명심해”라고 조언했습니다.
뜬금없는 선배의 말에 무슨 소리냐면서 손사래를 쳤지만 돌아서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그 이야기가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그랬습니다. 사업을 시작한 뒤 너무 예민해져 있었고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저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여 가끔은 울적한 기분이 든 것입니다. 감추려 해도 표정에서 드러나는 것.
그날 이후로 스트레스 극복에 대한 방법을 나름대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도 하고 관련 서적을 구입했습니다. 지인을 통해 심리 상담사와 전화로 가볍게 통화도 했습니다. 검색창에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치니까 자가 진단법이 검색어로 눈에 들어왔습니다. 내가 설마 스트레스를 그렇게 심하게 받고 있을까 싶었습니다. 검색어를 누르자 들어오는 단어들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습니다. ‘전과 달리 아침에 일어나기가 너무 힘들다’, ‘술 커피 담배가 전과 비교해 많이 늘었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등의 내용에서는 순간 움찔움찔했습니다. 테스트를 마치고 점수를 합산해 보니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있고 주의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그날 이후 선배 경영인들의 노하우를 찾아서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고 느낀 것입니다.
◇“증세가 심하면 전문가와 상의하라”
친구 중에 크게 사업을 하는 A 대표는 회사의 지분과 인센티브 문제로 다툼을 벌이다가 울화병이 나서 병원 치료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회사가 어려울 때는 큰 불만 없이 잘 지내던 동료들이 매출이 크게 늘고 돈이 들어오자 자기 몫을 챙겨달라고 단체로 ‘태업(怠業)’을 하는 통에 골머리를 앓았던 것. 회사는 더 잘 나가는데 대표는 반대로 속병이 나서 우울증 초기 증세까지 왔던 셈입니다.
또 다른 B 대표님은 회사의 거래처에서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상을 떠넘기는 통에 매출이 늘어날수록 손해를 보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번에만 손해를 감수해 주면 다음에는 챙겨주겠다는 거래처 담당 과장의 협박과 회유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납품을 했던 것입니다. 역시 B 대표님도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 와서 병원 치료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제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단순히 우울증에 대한 사례를 소개하려는 게 아닙니다. 이분들의 경우 초기에 자신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또는 외면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쉽게 말해 울화병을 키워서 큰 병이 됐다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장님들이 범하는 실수가 이것입니다. 사업을 하면서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해 쉽게 생각하곤 합니다. 업무의 효율도 떨어질 뿐 아니라 대인관계를 잘 풀지 못하게 되어 사업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도 본인만 괜찮다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심한 경우 회사 직원들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가정에 불화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요즘 들어 저는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초기 벤처 사업가들에게 ‘스트레스에 좋은 방법이 없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습니다. 저에게도 필요하고 주변에도 좀 알려주고 싶어 선배 경영자와 심리 치료 전문가, 그리고 전문 자료를 참고해 나름의 스트레스 극복 방법을 정리해 보기로 했습니다. 물론 저도 창업을 하고 나서 크고 작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현기증과 식욕부진으로 고생하기도 하고 가벼운 우울증도 있습니다. 그런 탓에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 벤처 기업인들을 위한 ‘스트레스 해소법 10계명’을 만들어 봤습니다. 이는 벤처인은 물론이고 일반인에게도 유용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우선 가족과 친구의 도움을 적극 요청하는 것입니다. 저는 벤처 창업자에게 주변의 동료 사업가들과 교류할 것을 추천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행운아입니다. 현재 정부에서 진행하는 벤처 인큐베이팅 제도 아래서 지원을 받으며 비슷한 시기에 창업한 동료 사업가들을 사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울 때 이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맥주 한잔 마시면서 속에 쌓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큰 위로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 동료 사업가를 만나면 직원들 흉보는 시간이 대부분입니다. 수다를 통해 답답한 기분이 풀리는 것은 당연합니다.
둘째, 충분한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운동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가장 좋은 해독제입니다. 시간이 부족해 운동에 소홀하기 마련입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제 남는 시간이 아니라, 시간을 쪼개서 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저 역시 아직 운동을 시작하지 못하는 형편이네요.
셋째, 평소에 하던 일을 계속합니다. 매일 하던 일을 계속하면 위안을 얻게 되고 스트레스를 가라앉게 한다고 전문가는 조언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장님들이 회사에 나오지 않고 쉬면 오히려 몸이 더 아프고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하는 이치도 이런 이유인듯 싶습니다. 넷째, 술이나 카페인의 섭취를 줄여야 합니다. 우선 술자리와 커피 미팅이 많습니다. 저녁에 많은 사람을 만나서 접대도 하고 미팅도 해야 하기 때문에 술과 카페인은 전보다 많이 접하게 됩니다. 피하기 어렵겠지만 가급적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절제하는 습관을 들여야겠습니다. 접대하는 ‘을(乙)’의 입장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냐고 반문하시겠죠? 맞습니다. 그래서 초보 창업가들의 신세는 처량하기만 합니다. 다섯째, 식사를 거르지 않고 제대로 먹어야 합니다. 특히 폭식은 스트레스에 따른 부작용이기도 합니다. 또한 시간이 없다고 인스턴트 식품으로 대충 때우는 습관도 고쳐야 하겠습니다. 벤처 타운을 가면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으로 구부정하게 서서 대충 때우는 벤처인들이 많습니다. 그런 식습관이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가중시킵니다.
◇현재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심신 안정
여섯째,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것은 기본이지요. 스트레스 때문에 잠을 깊게 못 자는 경우에는 가볍게 반신욕을 하고 우유 한잔을 따듯하게 마신 뒤 잠을 취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고전에 답이 있습니다. 물론 그래도 잠이 잘 오지 않는다면 억지로 자려고 하지 말고 불을 끄고 침대에 편하게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신체의 긴장을 풀어주고 스트레스를 이완시켜 준다고 합니다. 일곱째, 자원봉사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정신적인 긴장을 풀어줍니다. 특히 남을 돕는 과정에서 자존감을 높여 기분을 전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덟 번째 저녁 모임이나 공연, 영화 감상과 같은 문화 활동을 통해 현실의 고민거리를 잠시 잊는 것도 좋습니다. 아홉 번째 텔레비전 시청을 줄이는 것입니다. 당장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지만, 지나친 자극과 눈의 피로로 인해 시청 이후 더 큰 피로감을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텔레비전 시청보다는 가벼운 음악과 독서로 긴장 상태를 풀어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끝으로, 자신의 현재 모습과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혹시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원망하는 마음이 쌓이다 보면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자신을 미워하게 됩니다. 누구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았는지 솔직히 인정하고, 더불어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다고 심리치료 전문가들은 강조합니다.
벤처인들에게 뭔가 도움이 되었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이번 칼럼은 저 자신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하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출발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인사이트컴퍼니는 이르면 12월 중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입니다. 제가 받는 스트레스는 설명 드리지 않아도 예상하실 수 있겠지요? 전문가도 아닌 제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을지 저어할 뿐입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The mind makes heaven of hell and hell of heaven.(생각에 따라 지옥이 천국이 되고 천국이 지옥이 되기도 한다.)”
이번 칼럼이 다른 벤처 새내기 뿐 아니라 저 자신에게도 작은 위안이 되었기를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 벤처인 여러분 힘내시길 바랍니다.
/안길수. 벤처기업인. (주)인사이트컴퍼니 대표. ceo@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