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신협, 기본으로 돌아가자] (상) 정체성 잃어버린 '서민금융의 꽃'

'지역사회 신용 대출' 역할 흔들… 설립 정신 퇴색

부실 우려에 당국 과도한 규제… 日 대부업체·저축銀 진입 탓

신용대출 비중 9.8%에 불과… 담보대출 경쟁력마저 약화

돈 들어와도 빌려 줄 곳 적어




현재 신협의 여신 운용 상황을 보면 문제점을 명확히 볼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전체 대출 37조9,454억원 중 신용대출은 3조7,212억원으로 9.8%에 불과하다. '신용을 바탕으로 한 협동'이 생명인 기관에서 신용대출이 전체 대출의 10분1이 안 된다. 금융당국이 최근 중·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중금리 신용대출 확대를 정책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나 여기서도 신협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은행권이 발 벗고 나서 중금리 대출을 확대하는 추세다.

신협이 지역사회 신용대출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잃어버린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외환위기 당시 부실 대출에 조합들이 쓰러지고 정부의 공적자금을 받으면서 규제가 대폭 강화됐다. 우량고객은 은행으로 떠나고 건전성 분류 및 충당금 설정 기준이 강화되면서 전체 여신 가운데 담보 대출 비중이 90% 이상으로 증가했다. 부실에 겁먹은 금융당국이 신협에 유독 과도한 규제를 들이댄 것도 문제였다. 신협을 포함한 상호금융 업계가 신용대출을 축소하자 그 틈을 일본계 대형 대부업체들과 저축은행들이 비집고 들어왔고 국내 신용대출 시장은 철저히 양극화됐다.


신협은 여기에 더해 최근 담보대출 경쟁력마저 잃어버리면서 생존의 기로에 섰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부동산 규제 완화를 통해 은행과 상호금융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한도를 통일했고 최근에는 신협이 토지나 상가 등을 담보로 돈을 빌려줄 때의 담보 가치마저 확 낮췄다. 금리 경쟁력이 안 되는데 대출 한도마저 은행과 비슷해지니 신협 입장에서는 출구가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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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들어와도 돈을 빌려줄 곳이 없는 신협의 근본적 문제는 예대율 수치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6월 말 기준 신협의 예대율은 71.18%에 불과해 감독당국의 예대율 규제 한도 80%를 무색하게 한다. 비과세 혜택 때문에 예금은 꾸준히 들어오는데 대출을 해줄 곳이 마땅치 않다 보니 조합들은 남는 돈을 중앙회에 예치하고 있다. 지역 사회에서 모인 돈이 지역 사회가 필요한 곳으로 다시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신협중앙회는 밀려드는 예치금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6월 말 현재 조합들이 중앙회에 맡긴 대내예탁금은 14조5,448억원에 달하며 중앙회는 이 가운데 90%를 채권 등 유가증권에 투자하고 있다. 당국의 규제로 대출도 맘대로 할 수 없어 대출 비중은 5% 수준에 그친다. 신협 고위관계자는 "유가증권 투자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대내외 경제 여건이 악화하면 조합 돈을 까먹을 수도 있어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금융시장의 고른 발전을 위해서라도 신협이 지역 사회에서 근본적 경쟁력을 회복, 독자적 생존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신협이 제 모습을 찾기 위해서는 신협의 특수성을 고려한 규제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이재연 금융연구원 박사는 "지금과 같은 모습이 계속되면 상호금융은 고객기반을 서서히 잃고 생존 가능성이 줄어든다"며 "신협은 신협의 취지에 맞는 영업 방식을 찾아야 하고 감독당국은 그 영업 방식의 특수성을 고려한 건전성 규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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