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 금융

21세기 지도자상/김기정 연세대 교수·정치학(특별기고)

대선이라는 중요한 정치일정이 계획되어 있는 올해는 각종 정치적 논쟁과 구호가 담론의 세계를 장악할 것이다.다양한 주장들이 범람하면서 지면을 현란하게 장식할 올해의 정치판을 상상해보라. 「대권무욕론」 「대권불가론」 「자필승론」 「시대순리론」 「세력결합론」 등으로 치장돼 대권을 향한 다툼은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말에 치러질 이번 대선은 우리 민족의 행로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정치권력의 정상을 향해 생사를 걸고 질주하는 「또 한사람」의 정치지도자를 선출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 땅 위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민족 구성원들에게 망망대해 21세기의 바다를 항해할 해도를 제시할 지도자가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실로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급속성장의 한계가 곳곳에 출현하기 시작하고 구조적 부패와 허상이 끊임없이 일각을 드러내고 있다. 오늘의 어려움을 딛고 21세기의 광활한 창공으로 웅비하려는 우리 민족을 번영과 선진한국의 창조로 이끌어 갈 지도자는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먼저 미래상에 대한 뚜렷한 목표와 비전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 21세기 우리의 국제적 위상이 어떠해야 하는지, 내적으로 어떤 사회를 이룩해야 하는지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이같은 미래지향적 목표는 현시대 우리의 자화상과 시대적 좌표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돼야 한다. 역사는 그 흐름 속에 동참하고 있는 이들에게 문제점과 과제를 동시에 던진다. 광복이후 한국정치의 역사적 목표는 적어도 세가지 영역에서 그 지향점이 주어졌다. 그것은 빈곤으로부터의 탈출과 민주주의의 성취, 분단 극복 및 민족통합이라는 과제였다. 경제는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자유에 대한 희생을 담보로 내적 발전역량을 구축했고 이제 선진국형 경제의 초입에 서 있다. 민주화의 목표는 오랜 민주화 투쟁의 결과 6·29선언과 문민정부의 출범으로 공고화의 과정에 들어섰다. 민족통합의 과제만이 다음 세기로 미루어져 있다. 따라서 21세기형 지도자는 무엇보다도 우리 민족이 이 세가지 목표를 완성하려는 행로에 서 있다는 시대적 소명에 투철해야 한다. 국민 복리증진을 위해 각종 위기에 직면한 경제를 선진국형으로 견고히 완결시켜야 하며 어떤 구실로도 민주주의 원칙은 손상시키지 말아야 한다. 또 한민족 공영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다가올 21세기를 준비해야 한다. 민족의 통합은 이 땅에서 근대성을 완결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시대적 과제이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변화 또한 그 시점이 그다지 멀리 놓이지 않았음을 일러준다. 민족통합의 과제를 중·단기적으로 어떻게 안정적으로 이루어 나가느냐 하는 접근법이 중요한 시점이다. 통합의 기회가 성숙되고 있는 만큼 우리의 대북정책은 21세기 한민족의 번영이라는 목표에 근거하여 추진돼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현명한 판단 또한 21세기형 정치지도자의 중요한 덕목중의 하나다. 개혁정신에 투철한 신념을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 개혁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이다. 급속한 근대화의 허상과 구조적 모순을 직시함으로써 우리의 내적 역량을 보다 견실하게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개혁으로 시동되었으며 현 체제가 이상적 완성형이 아닌 이상 그 필요성은 여전히 유효하다. 국민적 의식수준에서부터 제도적 장치에 이르기까지 개혁적 의지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유도하는 인물이 필요하다. 개혁의 소신은 정치적 도덕성에서 나온다. 눈앞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야합을 손바닥 뒤집듯이 행한 인물이거나 정치적 권력을 등에 업고 부당한 부를 축적한 인물에게 어찌 우리 민족의 미래에 대한 책임을 기대할 수 있으랴. 「떼를 지어 몰려 다니는 정치」에만 골몰하거나 국민을 조직과 동원의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작태는 정치에 대한 국민적 불신만 증폭시킬 뿐이다. 미래로 향하는 역사의 움직임에 예지를 가지려는 자는 오늘의 모습을 직시하는 통찰력이 필요하며 오늘의 좌표는 투철한 역사인식을 통해 보인다. 21세기를 목전에 둔 오늘, 경륜을 지니면서도 노회하지 않고 지혜가 충만하되 계략을 일삼지 않는 지도자의 등장에 큰 기대를 거는 이유는 우리가 그만큼 중대한 기로에 서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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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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