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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6%대 예산이냐, 4%대 예산이냐의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기존처럼 장밋빛 전망에 근거해 확대예산을 편성할 것이냐, 저성장·저물가 기조라는 현실을 반영해 긴축예산을 편성할 것이냐 고민이 깊어져만 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6%대 경상 성장률 달성이 사실상 어려운 만큼 정확한 경기 전망과 세수 추계를 통해 반복되는 세수 펑크를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수 펑크에 따른 재정절벽을 막기 위해 해마다 수십조원의 불용예산을 남기고 국가 채무를 늘리는 악순환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전성인 홍대 경제학부 교수는 "돛을 목표와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항해하는 우를 더 이상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다 물가지표인 GDP 디플레이터를 더한 경상 성장률을 바탕으로 예산을 짠다. 올해 예산의 경우 경제 성장률 전망치 4.0%에 GDP 디플레이터 2.1%를 더한 경상 성장률 6.1%를 기준으로 편성했다.
국회에 제출한 '2015년 국세 세입 예산안'에 따르면 올해 목표로 한 총 국세 징수액은 221조5,000억원이다. 지난해보다 16조원(7.8%)이나 더 걷어야 실현 가능한 목표다. 국회에서 확정된 목표치는 4,000억원이 줄었지만 이 역시 지난해보다 15조6,000억원 많다. 어려운 경제 현실과 4개월 연속 0%대 물가를 고려하면 결코 달성하기 쉽지 않은 수치다. 이에 따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규모 세수 펑크가 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 같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3%대 중반의 경제 성장이 가능하며 실물경기의 회복세가 점차 강화되면서 물가 상승 압력이 예상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 내부에서는 이미 저성장·저물가 기조 고착화에 대비해 중기재정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경제신문이 단독 입수한 기획재정부의 '세입 여건 변동을 감안한 재정수지·국가채무 시나리오'를 보면 정부의 이 같은 고민이 그대로 드러난다. 기재부는 저물가로 인한 GDP 디플레이터 하향 추세를 고려해 경상 성장률이 6.1%에서 4.8%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기 하방 압력이 커 당초 계획보다 세금이 잘 걷히지 않고 있다는 최근의 현실도 인정하고 있다.
기재부의 추산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임기 5년 동안 세수 펑크 규모는 총 47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기재부는 지금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경우 국가 채무는 다음 정부가 출범하는 오는 2018년 40%대에 이를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하고 있다. 이는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한 지난해 7월 이후 몇 차례의 확대재정 정책을 펼치면서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될 때마다 전혀 문제없다고 한 주장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도 더 이상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 교수는 "4.8%의 경상 성장률도 긍정적"이라며 "GDP는 0.5%포인트, GDP 디플레이터는 0.3%포인트 정도 더 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결국 6개월도 안 돼서 드러날 거짓말을 한 것"이라며 "올해 세수 펑크 규모 역시 정부가 예상한 5조원을 크게 웃돌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있는데다 디플레이션 우려마저 심화하고 있어 기존 경기상황을 예측할 수 있는 기반이 약화되고 있다"며 "일단은 정확한 세수 추계를 하는 것이 첫 단추"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