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한국「경제학」의 진로/유장희 이대 국제대학원장(송현칼럼)

한국경제가 지금 위기국면에 처해 있는 것 못지 않게 한국의 「경제학」도 적지않은 진통을 겪고 있다. 한때 사회과학의 꽃이라고까지 불렸던 경제학이 한국에서는 비인기분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학문적 내용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그것이 실제로 정부정책이나 기업경영에 응용되는 범위에 있어서도 심각한 한계점에 부딪쳐 있는 것이다. 요즘 한창 논란의 대상이 되고있는 금융개혁방안이나 경부고속전철 처리문제 등에 있어서 경제학적 논리가 동원되는 예는 극히 드물다. 엄정한 비용과 편익의 계산하에서 몇가지 대안이 어떤 득실을 가져다 줄 것인가에 대한 분석은 거의 없다. 주로 그것을 입안한 실무자들의 상식적 논거만이 나와 있을 뿐이다. 기업의 지배구조라든가 산업구조 개편에 관해서도 수많은 주장이 있지만 실제로 어떤 실증적 분석을 거쳐서 나온 것은 거의 없다. 그리고 각각이 달고 있는 국가차원의 비용과 편익은 무엇인지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결과로 정부와 기업이 의사결정시 경제학적 논리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게 줄었는가 하면,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택하는 학생수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물론 학부제 실시로 인해 가급적 부담이 적은 인접학과의 과목을 택하려는 대학생들의 편의주의적 타성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제학을 배워봤자 앞으로 활용할 수 있는 내용이 별로 없겠다는 「수요자」들의 가차없는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크다. 그러면 한국의 경제학이 이렇게 냉대를 받게 된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여기에는 정부와 학계가 다 책임이 있다고 본다. 즉 정부가 경제학의 분석적이고 과학적인 성능을 크게 간과하고 있었다는 점과 학계가 그동안 경제학을 너무 현학적 학문으로 몰고 왔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먼저 정부쪽의 요인을 보자. 과거 80년대까지만 해도 국가경제정책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경제학의 몫이 컸다. 우선 부총리 자리에 학자출신이 많이 들어와 일했다. 또 부총리 주변은 물론이고 대통령 주변에 경제학자들이 전공별로 많이 모여 있었으며 그들로부터 밀도있는 자문을 구했다. 때로는 정부관리들도 경제학자들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서 여러가지 방법으로 접근하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90년대이후 수많은 부총리가 등장하였고 학자출신도 한두명 있었으나 이들이 큰 역할을 할 수 없었던 사정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최근 대통령 측근에서 자문하는 경제학자 그룹이 있다는 말은 별로 들어본 일이 없다.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학자들도 아예 접근이 불가능하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나 부총리가 학문적 접근법에 눈길을 주지 않았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세종대왕이 성군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그가 재임중에 천하의 일류학자들과 끊임없이 연찬하면서 나라의 먼장래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학자들에게도 그동안 문제는 있었다. 경제학을 지나치게 정형화, 모델화 시켜놓고 수많은 현실문제를 「가정」이라는 틀안에 몰아넣기 일쑤였다. 선진국에서는 박사학위 남발을 막기 위해, 그리고 일류저널에 채택되는 것을 어렵게 하기 위해 고차원의 수학과 계량법을 쓰도록 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가정들이 여과없이 끼어드는 것이 다반사로 되어 있다. 이러한 논리전개의 기법도 순수한 학문적 차원에서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사회는 그 이상의 것을 경제학으로부터 기대하는 것이다. 현실이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는 실용적 측면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경제학자들이 「가정」의 틀안에서 안주하는 동안에 정부는 경제학자들을 비현실적인 사람들로, 학생들은 경제학과목을 난삽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경제학의 성격과 내용을 다시 가다듬어 재정립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경제학의 진로 자체도 문제려니와 잘 짜여진 경제학적 분석 없이 결정된 정책이나 경영방침이야말로 위험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몇가지 과업이 있다. 첫째, 한국의 「경제학」교육검토위원회 같은 것을 발족시킬 것을 제안한다. 경제학자들이 주체가 되고 정부, 기업부문의 전문가들이 자문해주는 형식이 좋을 것이다. 여기서 21세기를 대비한 실용적 경제학의 골격을 짜야 한다.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생동하는 경제학을 새로이 탄생시켜야 한다. 둘째는 정부조직 개편때 행정부 내에 경제자문위원회를 설치하는 일이다. 국가경제의 운용은 단기적 정책뿐만 아니고 장기적 비전설정을 필수불가결한 요건으로 삼고 있다. 정부관료들은 속성상 장기적 국가비전설정을 맡을 수 없다. 국운의 먼 앞날을 내다보면서 실현가능한 꿈을 꾸어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학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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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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