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Culture&Life] 김희순 EYA 대표

"에이전트가 출판기획~마케팅 전과정 참여모델 구상중"

작가·에이전시·출판사 경계 넘어 3자 협업해야 성공 가능성 높아

'해리포터'·'정의란 무엇인가' 등 20년간 4만여건 출간 성사시켜

강연·e러닝으로 사업 확대하고 미·유럽 등 해외시장도 적극 진출



올해로 설립 20주년을 맞은 EYA(에릭양에이전시)는 그간 저작권 시장에서 매년 2,000여종씩, 지난 20년간 4만여건을 성사시켰다. 그렇게 출간된 작품들의 판매량은 1억5,000만여부로 바닥에 늘어놓으면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남는 규모다. EYA가 들여와 성공시킨 베스트셀러는 많다. 가장 유명한 것이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 엄청난 인기도 누렸지만 국내에 없던 '영 어덜트 소설'(청소년과 20대 초반 대상의 소설) 시장을 새롭게 열었다. 또 잭 웰치, 빌 게이츠의 저술로 경제경영서 붐을 이끌었고 인문서로는 근래 드물게 히트를 친 '정의란 무엇인가', 인물전기 시장이 척박한 국내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스티브 잡스의 전기도 EYA를 거쳤다. 그 외에도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론다 번의 '시크릿',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 저작물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주요 업무는 아니지만 애니메이션이나 캐릭터를 들여오는 일도 함께 해왔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아동물 '꼬꼬마 텔레토비'(1998년) '월레스와 그로밋'(1999년) 등을 수입했다. 또 현재는 중국으로 '뽀로로와 친구들' 출판물 수출 작업을 하고 있고 그 외에 영어교육·아동도서와 캐릭터 라이선싱도 진행하고 있다. "작품 기획단계부터 출판 편집자와 협력해 성공하는 모델을 만들려고 해요. 7년 전 설립한 중국 사무소는 이미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또 그간 (책에서) 영화나 연극·뮤지컬 등 예술 분야로만 2차 저작물이 발생했다면 이제는 강연이나 교육프로그램·e러닝 등으로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소위 '강연 에이전트' 역할이죠. 출판 시장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정부의 해외진출 지원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합니다." 김희순(51·사진) EYA 대표는 요즘 새로운 업무 구상으로 바쁘다. 작가-에이전시-출판사로 이어지는 전통적 경계가 무너지는 시점이라고 판단했고 국내외 작품을 출판사에 연결하는 역할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껴서다. 에이전트가 작가·편집자 등과 협업해 만들어내는 작품에서 더 큰 가능성을 보고 있다.

◇한 권의 책이 출판되기까지 '퍼즐 맞추기'=출판 저작권 에이전시는 말 그대로 작가의 지적 창작물에 대한 권한을 사고파는 업무를 대행하는 곳. 해외에서는 대부분의 작가가 연예인처럼 에이전시에 소속돼 출판과 관련된 모든 일을 위임하지만 국내에서는 대개 해외 출판으로 한정된다.


국내외 저작권을 거래한다는 것은 언어적 장벽을 감안해도 그리 녹록하지 않다. 우선 작품 일부를 접할 수 있는 샘플 번역과 요약본, 작가 및 작품 소개, 시장성 검토,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신경 써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심지어 어느 출판사 편집자가 어떤 유의 책을 좋아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요령이 될 정도다. 과장 섞어 한 권의 책이 출판될 때까지 모든 단계의 퍼즐 조각을 맞춰가는 과정이다.

실제로 책이 출간된 후에도 작가의 의견을 전달하고 마케팅에도 관여하는 것이 추가된 업무 영역이다. 그저 저작권 하나 넘겨주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한다면,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거래 성사도 중요하지만 작품의 상업적 성공 역시 에이전시의 이력·평판으로 남기 때문이다.

국내 저작권 에이전시의 역사는 해외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다. 개인의 역량에 의존해 1회성으로 거래되던 시절을 넘어 현재의 형태로 정착한 것은 불과 20~30년 안쪽의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규모를 갖춘 대표적인 곳으로는 EYA와 KCC에이전시·임프리마코리아에이전시·신원에이전시를 꼽는다.

그는 저작권 역사가 깊은 영국의 경우 출발 자체가 다르다고 말한다. "사교계 클럽 문화에서 자연스럽게 에이전시의 역할이 확립돼 작가 개인의 비서 겸 출판사 에디터에 에이전트 역할까지 겸하고 있죠. 작품 기획단계에서 함께 방향을 잡고 꾸준히 상의하는 등 출판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참여합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해리 포터' 시리즈죠. 에이전트가 이미 거절당한 원고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여러 출판사를 돌며 계약을 성사시키고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저작권 수입창구 넘어 中·아시아 수출 적극=EYA는 한국 출판물의 수출에서 적극적으로 공략하는 지역은 아무래도 중국이지만 꾸준히 미국·유럽으로의 가능성도 확인하고 있다. 지난 5~6년 사이 한류 열풍에 힘입어 드라마·메이크업 관련 도서가 중국에서 40만~50만부 가까이 팔리는 등 계약은 아시아에 집중됐지만 최근 미국 펭귄사와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계약도 성사시켰다.

중국에서 지난 2011년 출간된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현재까지 80만부가 넘게 팔렸고 교육만화 '노빈손어드벤처 시리즈'(2007년) '세상에서 젤 말랑말랑한 물리책 시리즈'(2008년) '마이 워너비 스타일북 시리즈'(2009) 등도 모두 10만부 넘게 판매됐다. 태국에서는 '판타지 수학대전 시리즈'가 2007년 계약돼 판매 36만부를 넘겼다. 아직까지 중국 전체 출판 시장에서 한국 도서의 비중은 3% 수준이지만 중국과 영미권 도서를 제외하면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한편으로 출판계는 에이전시들이 수임료를 더 많이 받기 위해 해외 저작권 가격을 올리고 과당경쟁을 부추긴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 20억원 규모의 선인세를 지불했다는 소문에 업계가 들썩이기도 했다.


김 대표는 이에 대해 "유명 작가의 작품에 파격적인 금액이 오갈 때면 늘 그런 오해를 받아요. 적어도 우리 스타일은 아닙니다. 다음 책 계약도 생각하고 있고 그보다는 책 판매에 따른 추가 수익을 더 중요시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에이전시가 장난친다고 시장이 따라오지는 않습니다. 저자가 거액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수요에 따라 형성되는 가격이 대부분"이라고 잘라 말했다.

관련기사



인터뷰를 마치며 전자책 시장의 전망도 슬쩍 물어봤다. 김 대표는 킨들 같은 전자책 전용 단말기의 확산을 전제로 낙관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간 출판 업계의 관심은 종이책과 전자책 시장의 '제로섬' 관계 여부였지만 최근의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전자책 시장의 급격한 성장곡선이 완만해지고 오히려 종이책 판매에 도움을 주는 사례가 확인되고 있지요. 하지만 다른 멀티미디어 콘텐츠에 유혹이 큰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가 아닌 전자책 전용 단말기의 확산이 필수입니다. 아마존의 '킨들'처럼 눈에 피로하지 않아 오래 볼 수 있고 안정적인 전자책 시장 수요·공급을 만들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She is…

△1963년 서울 △1982년 창문여고 졸업 △1986년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1989년 호주 피터샴칼리지 통번역 과정 수료 △2013년 KAIST 창조경영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2005년 EYA 대표 △2014년 영국 런던 국제도서전 공로상 수상



외국어·다독은 기본 … 글솜씨 갖추면 금상첨화

■출판 에이전트 꿈꾼다면

아직 국내 출판 저작권 에이전시는 작가를 직접 관리하는 프라이머리 에이전시가 아닌 지역 내 판권 거래를 위탁받는 서브(보조역할) 에이전시가 대다수다. 따라서 책의 완성도를 높이는 작업보다는 저자의 의도에 부합하는 번역과 마케팅에 더 치중하게 된다. 김희순 대표는 "초창기 출판 저작권 에이전시는 해외 작품을 국내에 알리는 창구 역할을 하는 데 불과했죠. 하지만 이제는 작품 자체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저자 입장에서 일하게 됩니다. 작가의 의도를 더 잘 전달하는 것이 결국 저작권 거래의 중요한 부분이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출판 에이전트의 자질로 외국어와 독서량, 나름의 사명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에이전트는 항상 시장보다 1~2년 정도 빨리 출판정보를 접하게 되죠. 긴 호흡으로 볼 때 본인의 관심사나 취향, 나름대로 이런 책이 출간되어야 한다는 신념 같은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건 그저 대학 교양수업 때 읽은 수준으로는 안되죠. 기본적으로 독서량이 많아야 하고 특히 개인적으로 관심이 깊은 분야가 하나쯤 있어야 합니다. 어느 정도 글솜씨까지 갖췄다면 더 좋습니다."

더는 책만이 지식 전달의 유일한 창구가 아닌 상황에서 저작권 거래창구만이 아닌 기획자의 역할도 주문했다. "출판이 다른 예술 분야는 물론 강연으로 확산되려면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급스럽고 예쁜 상품을 만들기보다는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을 충족하는 책을 기획하는 코디네이터, 현재의 기획자·편집자 역할도 함께 해야 합니다. 앞으로는 다양한 출판 경력을 가진 전문가가 기획단계에서부터 정보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해질 겁니다."

이런 그가 가진 나름의 '선구안', 책을 고르는 기준은 어떤 것일까. "일단은 팔릴 만한 책, 편집자들이 좋아할 만한 책이죠. 그다음은 현재 국내 시장에 없는 책입니다. 저도 예전에는 '이런 것도 국내에 있어야 하지 않나' 하면서도 책을 들여오는 데 주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놓친 책이 많았는데 결국은 시간 싸움일 뿐 시장이 움직이더군요. 지금은 외국 작가나 출판사를 설득해 우리 정서에 맞게 고쳐서라도 들여오려고 노력합니다."



사진=이호재기자


이재유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