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내 자식이라도 배 타고 수학여행 간다면 말릴 겁니다."
해운업계에서 30년 동안 일해온 한 여객선 선사의 대표 A씨는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연안여객선 업계의 문제를 묻자 긴 침묵 끝에 대뜸 이런 고백을 했다.
이 회사는 여객선 5척을 운용하지만 승무원은 30명 남짓이라고 밝혔다. 항해에 필요한 필수요원들을 채우고 이 직원들 월급 주기에도 급급하다는 것. 그러다 보니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선박을 제때 수리하거나 전문적인 안전관리자를 육성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여객선 업계 상황이 워낙 열악해 대다수 회사들이 적자에 시달리다 보니 안전 문제까지 완벽하게 대비하기 힘든 게 현실이고 정부의 관리 감독도 허점이 많다"며 "상황이 이런데 아이들만큼은 돈 조금 더 줘서라도 비행기 태우는 게 낫지 않겠냐"고 자조적인 목소리로 읊조렸다.
정부의 안전관리 시스템과 안전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해운업계의 열악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는 한 수많은 승객들은 시한폭탄이 든 배에 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안전관리자는 '싸인'만 하는 사람?=현재 연안여객선의 경우 한국해운조합의 운항관리사가 안전 관리감독을 맡고 있다. 운항관리사가 배가 출항하기 전에 안전에 문제가 없는지 종합적으로 확인해 출항을 허락하는 구조다. 그런데 이런 운항관리사는 사실상 '있으나 마나' 한 존재라는 게 해운업계의 일관된 지적이다.
인천에 있는 한 여객선사의 대표는 "운항관리사는 선사가 화물적재 상태, 승객 인원, 통신 상태 등 보고서를 적어 내면 서면으로 '사인'만 하는 역할만 하는 게 관행"이라고 전했다.
해운조합의 관계자 역시 "배의 적재 가능 화물 톤수, 평형수, 식수, 연료 등은 1항해사밖에 모르며 운항관리사가 선박의 구체적인 사항을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선장이나 1항해사가 출항 전 보고서를 속여 작성해도 운항관리사는 사실상 알 수 없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런 관행을 제도가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해운법 시행규칙 제15조의8의 3항을 보면 운항관리자 직무는 '선장이 제출한 출항 전 점검보고서의 서면확인'이라고 돼 있다. 즉 운항관리사가 사인만 해도 법적으로 문제 없다는 것이다. 6항에는 운항관리자 직무에 '여객선의 승선정원 초과 여부 및 화물의 적재한도 초과 여부의 확인과 그밖의 운항질서 유지'라고 돼 있지만 그것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방법은 서면확인에 불과한 셈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선사는 조금이라도 수익을 늘리기 위해 승객ㆍ화물을 기준보다 더 실으면서 이를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운항관리사는 이런 상황에 깜깜한 채 출항을 허락해주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청해진보다 못한 업체 수두룩…여객선은 마이너스 장사 중=정부의 관리 소홀도 문제지만 해운사들의 부실한 재정상태는 더 문제다. 배의 안전은 1차적으로 해운사들이 책임져야 하지만 대부분 해운사들은 번 돈으로 적자도 메우지 못하는 마이너스 장사를 하고 있어 안전에 투자할 겨를조차 없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국내에서 여객선을 운행하는 해운사는 줄잡아 31곳이다. 이들은 공시 대상에 들어있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며 대부분 중고선을 수입해 운영하고 있다.
이들 해운사는 부채가 1,200%에 달하고 5곳 중 한 곳이 자본잠식에 빠져 있는 등 심각한 경영상태를 보이고 있다. 영세한 해운사가 중고선을 운행하면서 비용절감을 위해 안전관리에 소홀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해운사 31곳의 순이익은 마이너스 26억원이다. 적자가 누적돼 자본잠식에 빠진 업체가 7곳이고 그 규모가 91억4,700만원에 달해 65억700만원인 당기순이익 규모를 뛰어넘는 것이다. 금융기관의 한 관계자는 "자본잠식된 해운사들은 상장된 기업이었다면 벌써 상장폐지됐을 곳인데 대출금 등으로 계속 연명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 해운사의 부채비율도 높아 평균 440%다. 3곳 중 한 곳은 평균 부채비율을 뛰어넘었고 최대 1,233%의 부채비율을 보인 해운사도 있었다. 이 해운사는 매출액 없이 순이익만 마이너스 2,800만원을 기록했다.
해운사들은 2009년 정부의 연안여객선 지원 방침에 따라 정책금융기관에서 대출지원을 받았다. 정책금융기관의 관계자는 "당시 도서 지역 주민의 편의와 한류 관광객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 속에 정부의 지원방침이 있었고 영세한 규모였지만 대출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현재 부채비율 973%를 기록하고 3억6,800만원의 자본잠식 상태에 있는 한 해운사는 2000년대 후반 정부의 태양광 발전 지원을 믿고 사업에 진출했다 지원금이 줄면서 설비 계약을 취소하기도 했다.
해운사 대부분이 엔화 대출을 받은 점도 특징이다. 금리가 싼 엔화 자금을 3%로 빌려 운영했는데 2010년 엔고가 지속되면서 타격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시중은행의 관계자는 "내항 여객선이기 때문에 엔화가 들어올 리 없고 키코 사태 여파로 환헤지(환율변동에 대비한 조치)를 하지 않은 업체가 많아 엔고로 피해를 본 해운사가 많다"고 지적했다.
◇과도한 운임 통제, 선박 건조=그렇다면 이런 연안여객선 업계의 재정난을 타개할 방법은 없는 걸까.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전반적인 혁신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정부의 여객선 운임 통제다.
정부는 연안여객선을 일종의 공익적 서비스로 간주해 운임을 통제하고 있다. 여객선사가 기름 값 등이 올라 운임을 올려달라고 운임인상 신고서를 내면 정부가 이를 검토해서 올려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보통 3~4년에 물가상승률 수준으로 오르는 데 그쳐 기름 값 상승에 따른 손해를 보전하기도 벅찬 실정이다.
한 해운사 관계자는 "승객 300명이 타는 쾌속선을 하나 만들면 130억원, 10년 미만의 중고여객선을 수입하면 60억~70억원이 들고 여기에 기름 값, 수리비 등의 수준도 버스와 같은 다른 대중교통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다"며 "여객선에도 버스처럼 준공영제를 도입해 정부가 어느 정도 운임을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해운사들은 고질적인 인력 부족도 토로한다. 기관사ㆍ항해사 등의 업무를 수행하려면 해기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는데 해기사는 2012년 기준 3,000여명이 부족하고 2020년에는 이 숫자가 5,50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젊은 인력 수급이 안 되다 보니 나이 든 선원들만 늘어가는 실정이다. 2011년 우리나라 연안여객선 선원의 58.0%가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다. 국내만 운항하는 내항선의 경우 50대 이상이 76.2%로 더욱 열악하다.
한 해운회사 대표는 "지금은 해양대학교를 나와도 제조업계 대기업이나 공기업으로 가는 실정이라 이런 추세를 막지 못하면 해운업계 전체가 고사할 수 있다"며 "정부가 지금이라도 전문 해양 인력 양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