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위기의 은행] <2> 퇴색하는 산업가치

금융환경 급변하는데… 폐쇄적 문화 갇혀 자리보전만 급급<br>9년전 임명 KB 도쿄지점장 행장 바뀌어도 인사 미루다 사고<br>정부가 만들어준 틀서 경쟁없이 손쉽게 돈벌어 인재육성 시스템도 부재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7월 취임 직후 "전통적으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소매금융 부문의 경쟁력을 확실히 다져 그룹의 성장기반을 구축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국민은행의 영업방식을 과거로 되돌린다는 뜻이다. 겉으로만 놓고 보면 국민은행의 장점을 살린다는 의미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해외진출이나 기업금융 같은 새로운 도전보다는 안전 위주의 영업을 하겠다는 의미인 셈이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내 은행들은 똑같은 영업방식을 고수해왔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국민은행도 다르지 않다. 안정적으로 영업을 하면서 한자리를 오랫동안 같은 사람이 맡아 일을 하다 보니 계속 사고가 터진다.


전문가들은 "국내 은행들은 변할 의지도 인재도 없다"며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만들어준 틀 안에서 경쟁 없이 편하게 영업을 해왔다"고 입을 모은다. 은행들이 산업으로서의 의미는 잃어버리고 감사 시스템이나 내부통제도 무력해졌다는 뜻이다.

◇변할 의지 없다…퇴행하는 은행들=부당대출 및 거래업체로부터 대출 커미션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국민은행 도쿄지점장은 과거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 때 임명됐던 인물이다. 민병덕 은행장을 거쳐 최근 이건호 은행장이 온 후에도 계속 자리를 유지했다.

다른 지역과 달리 홀로 영업실적이 좋았기 때문인데 해외 영업실적 부진으로 고민하던 국민은행 입장에서는 지점장을 교체할 이유가 적었다. 안정적인 수익만 따지다 보니 금융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음에도 이를 방치한 꼴이 됐다.

이런 인사실패 뒤에는 뿌리깊은 출신 간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 옛 국민과 옛 주택 간의 자리 나눠먹기를 말하는 것인데 우리은행도 여전히 화학적 결합을 이루지 못한 게 현실이다. 은행 간 합병이 이뤄진 지 길게는 10년도 더 됐지만 여전히 예전 틀에 갇혀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은행들의 복지부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저금리ㆍ저성장 시기로 접어들면서 지점에서는 중ㆍ저신용등급 대출은 최대한 꺼린다. 성장하는 기업에 대출이나 투자를 해 초과수익을 얻고 경제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이 같은 일은 회피한다.

외부로는 기술기업에 대한 평가 시스템 부족을 내세우지만 그럴 의지도 이를 수행할 만한 인력도 없다는 게 중소기업계의 냉정한 평가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모바일ㆍ인터넷뱅킹 시대에 따른 체질변화도 느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7~9월 중 모바일뱅킹을 포함해 인터넷뱅킹 이용건수는 일평균 5,476만건에 금액으로는 33조4,790억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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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데도 인력 부문은 더 고비용 구조로 가고 있다. 시중은행들의 연봉은 평균 7,000만~8,000만원대다. 지점장은 1억원이 훌쩍 넘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은 기존의 무기계약직 직원까지 모두 정규직으로 바꾼다는 계획을 내놨다. 일자리의 안정성과 고용이 최선의 복지라는 점을 감안하면 바람직하지만 실제로는 몇 년 뒤부터 크게 부담이 늘어난다.

지금까지 국민은행은 정규직 입사시 시작하는 L1부터 L4까지 4단계로 직급을 운영해왔다. 최근 무기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서 L0를 새로 만들고 정규직 임금테이블에 편입시켰다. L0가 된 기존 직원들의 경우 몇 년 사이에는 인건비가 늘지 않지만 이들이 본격적으로 L1 이상 승급을 하게 되는 수년 뒤부터는 급여비용이 대폭 증가한다는 얘기다.

◇체계적 인재 육성 시스템 부재=현재 은행들은 체계적인 인재육성시스템이 없다. 여전히 상당수 시중은행들의 임원육성 프로그램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 국민은행만 해도 경영진이 바뀔 때마다 임원이 물갈이 되다 보니 인수인계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중간에 보고가 누락되거나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음에도 임원들이 현안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런 탓이다.

실제 국내 은행은 조직문화가 매우 폐쇄적이다. 공채를 중시하고 국민이나 우리은행처럼 합병은행이 출신별로 갈등하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 전문가가 들어가 조직을 개혁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은행 내부의 외부 인력은 금융감독당국 출신의 감사와 변호사 출신 같은 전문직 정도가 유일하다.

최고 인재를 유치할 만한 동력도 적다. 조직문화가 폐쇄적이고 평등을 중시하다 보니 최고인재를 돈으로 보상해주는 일은 불가능하다. 금융감독당국도 막고 있다.

◇우리만의 성공 방정식 만들어야=현재 국내 은행들은 사면초가다. 해외진출도 쉽지 않고 국내에서는 소비자보호 강화 움직임과 저금리ㆍ저성장을 맞아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답은 무엇일까. 해외진출과 관련해서는 우리보다 금융기법이 뒤지는 동남아시아와 중남미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세계를 상대로 하는 씨티와 HSBC와 같은 길을 가기에는 은행 신용등급과 기축통화국 여부가 차이가 있다. SC가 성공 모델로 언급되기는 하지만 영국계인 SC는 아프리카와 중동, 동남아 등 옛 영국 식민지 위주로 진출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장점이 있는 플랜트나 발전소를 건설 공급하는 대기업들과 패키지로 함께 나가야 한다는 말이 많다. 금융까지 공동으로 제공해야 발주처도 편하고 우리도 고수익을 누릴 수 있다는 얘기다.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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