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공존의 상실/원종성 동양에레베이터 회장(로터리)

소나기가 왔다. 이제 저 소낙비가 걷히면 완연한 가을이 자리를 할 것이다. 바람은 서늘해질 테고 그러면 머릿속이 간질거리면서 가슴은 이유없이 뻐근해지는 병이 도진다. 작년에도 그랬다. 하지만 올해는 그 몇 곱절이다. 거기다 어지러움증까지 합쳐졌다.잠시 신문과 뉴스를 보지 않기로 했다. 지난 여름 우리가 겪은 죽음들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그 주검의 모양이 얼마나 처참했고 잔인했는지 형언할 수조차 없다. 아이를 가진 젊은 부부들은 요즈음 아이들에게 TV를 보일 수 없다고 한다.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라는 물음은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마찬가지겠지만 분명 이번 여름만큼은 그 도가 지나쳤다. 「건강한 사회」라는 표현이 다분히 의식적이라면 그냥 「편안히 살 수 있는 사회」라고 해두자. 그런 사회가 이 시대에 존재할 것인가라고 묻는 이가 있다면, 나와 상반되는 존재를 허락할 때 가능한 것이라고 일러주고 싶다. 다만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삶의 목표가 선과 아름다움에 다다를 수 있어야 한다. 다이애나와 테레사, 한 여인은 호화롭고 따스한 양지에서 또 한 여인은 가난하고 초라한 음지에서 평생을 살다 갔지만 두 사람 모두 세인의 애도를 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대중을 위한 선과 아름다움에 머무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사에 있어 사랑과 미움이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애를 태우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공존을 허락하지 못하고 상실했을 경우 인간이 얼마나 지독하고 끔찍할 수 있는지 또한 알게 된다. 국가의 장래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가 누구를 선택하든 역사의 도도한 강물은 희망과 절망이라는 경계를 넘나들며 흘러갈 것이다. 다만 스페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카밀로 호세셀라가 던진 화두에서 위안을 얻어본다. 『앞날에 대한 희망을 잃지 맙시다. 나는 이 말을 하는데 지쳤지만 이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이다.』

관련기사



원종성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