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백화점업계 최대 화두는 '고급화'다.
할인점의 저가공세에 더 이상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고급화는 백화점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화점이 추구하는 고급화의 모습을 보면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다. 백화점들은 고급화라는 명분을 내걸고 1층 매장을 해외 명품과 외제 화장품 일색으로 바꿔버렸다.
장사가 잘되는 위치 좋은 매장에도 어김없이 외제 브랜드가 들어서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국 브랜드의 입김은 더욱 세지고 백화점들은 이들의 요구에 속절없이 끌려 다니는 형편이다.
한 국내 화장품 브랜드는 주요 백화점 매장에서 당당히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제품을 만들지만 이 업체는 백화점에서 '국산'이라는 이유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한다. 백화점 고급화의 현실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백화점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급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명품브랜드 유치 경쟁이 붙은 것은 사실"이라며 "서로 유치하려다 보니 국내 업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영업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이들의 무리한 요구도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백화점은 고급화가 단지 얼마나 많은 명품과 고가의 외국 브랜드가 입점해 있느냐에 따라 판가름 나는 것으로 믿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백화점의 품격이란 '무엇을 파느냐'에 따라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파느냐'또는 '누가 파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다.
백화점들은 먼저 원칙과 철학을 세우고 양질의 인력을 양성하는데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 이런 과제를 외면한다면 백화점의 고급화는 지금의 왜곡된 모습으로 고착화 할 것이 분명하다.
백화점 경영자들에게 '명품'은 당장의 위기를 넘기게 해줄 대안으로 그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손쉬운 해결책만을 계속 찾다 보면 국내 백화점산업은 외국의 몇몇 유명 브랜드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최악의 상황까지 내몰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임동석<생활산업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