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토요 산책] 우울한 '노벨상의 계절'


올해 노벨상은 어느 때보다 화제가 많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초대받지 못한 잔치였다. 지난해 김필립 컬럼비아대 교수가 노벨 물리학상 수상의 문턱까지 갔던 기억은 이제 아스라해지고 안타까운 마음은 더욱 깊어진다. 올해 노벨 생리ㆍ의학상은 면역 시스템의 비밀을 밝힌 랠프 스타인먼, 브루스 보이틀러, 쥘 호프만 교수에게 돌아갔다. 공교롭게도 이 가운데 자신의 노벨상 수상 업적이 된 과학적 발견으로 암 치료의 길을 연 석학 스타인먼은 수상자 발표 3일 전 췌장암으로 숨졌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풀뿌리 기초과학 저변 넓히고 노벨 물리학상은 특정한 유형의 초신성을 추적해 우주팽창 가속의 비밀을 밝혀낸 솔 펄머터, 브라이언 슈미트, 애덤 리스에게 돌아갔다. 빅뱅 이후 우주의 팽창이 줄어들지 않고 되레 가속된다는 사실은 기존 우주관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러한 팽창의 원동력은 우주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알려진 암흑에너지에 의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암흑에너지가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은 이론만 무성하다.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이 아인슈타인의 '실수 아닌 실수'인 우주상수 개념이다. 이에 따르면 암흑에너지가 만유인력(물체끼리 서로 끌어당기는 힘)에 반대되는 척력(斥力ㆍ두 물체가 서로 밀어내는 힘)으로 작용해 우주의 팽창을 가속화시킨다고 한다. 한편 노벨 화학상은 준결정을 최초로 발견한 다니엘 세흐트만 이스라엘 공대 교수에게 돌아갔다. 준결정은 원자의 배열이 유리처럼 완전히 비결정도 아니고 다이아몬드처럼 정확한 결정 형태도 아닌 중간 상태로 기존의 고체 구조와는 전혀 다른 물질이다.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반복되진 않지만 기묘한 질서 패턴이 숨어 있어 회절 무늬를 보면 5각형 대칭성이 뚜렷이 나타난다. 그의 발견 당시에 관련 논문 출판이 거부되고 동료들로부터 '미친 소리'로 여겨지는 등 커다란 파장을 낳기도 했다. 이들 노벨상 수상자의 공통점은 새로운 눈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애플의 창업자이자 혁신가인 스티브 잡스가 시작한 'Think Different' 캠페인이 생각난다. '여기에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다.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보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그들을 미쳤다고 할 때 우리는 그들 속의 천재성을 본다.' 이 캠페인에는 밥 딜런, 마틴 루서 킹, 토머스 에디슨, 파블로 피카소, 그리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등장한다. 개구리를 공중 부양해 '괴짜' 이그노벨상을 수상하고 스카치테이프를 이용한 창의적 발상으로 그래핀을 만들어 2010년 노벨상을 수상한 안드레 가임을 비롯한 수많은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이 이러한 부류의 사람이다. 창의적 연구 환경 만들어줘야 한국인 수상 전망은 암울하지만 노벨 과학상의 원동력은 기초과학의 저변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되새기며 노벨의 계절을 마무리하자. '노벨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은 지난 1917년 막스플랑크연구소를 벤치마킹해 이화학연구소(RIKEN)를 설립하고 기초과학에 집중 투자한 지 40여년 만에 유가와 히데키가 노벨 물리학상을 처음 수상하는 감격을 누렸다. 우리나라는 이제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기초과학연구원을 설립하는 등 국가적으로 본격적인 기초과학 투자를 시작하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중장기적 안목으로 우수한 젊은 과학자들을 발굴ㆍ육성하는 한편 풀뿌리 기초과학의 저변을 넓히고 기초과학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강화해나가야 한다. 젊은 과학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연과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마음껏 창의적인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뒤 강태공처럼 진득하게 기다려주자. 노벨의 길에 왕도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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