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88'이란 단어가 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 수가 전체의 99%이고 종사자 수가 88%에 달한다는 뜻이다.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처럼 중소기업이 압도적인 상황은 사실 좋은 게 아니다. 후진국일수록 영세사업자와 중소기업이 많으며 경제가 발전할수록 이 비율은 줄어든다. 전문가들은 독일처럼 중소기업 비중이 90%, 종사자 비중이 80% 정도 되는 '9080' 사회가 돼야 경제가 활력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크고 중견기업이 중소기업을 인수합병(M&A)해 사업과 고용을 흡수해야 한다. 중견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 방향도 이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정작 현실을 보면 지원과 규제가 엇박자를 내며 오히려 중견기업을 고사시키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재지정된 '주조' 품목이다. 서울경제신문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미래 신성장동력이 될 주조 등 공정기술을 뿌리기술로 지정하고 중소·중견 뿌리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동반성장위원회가 2월 주조를 중기적합업종으로 재지정하면서 중견기업의 진입을 막았다. 한쪽에서는 지원한다면서 다른 쪽에서는 규제를 들이대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한단 말인가. 절반이 넘는 중견기업이 기업소득환류세제 적용 대상이 되는 것도 문제다. 중견기업은 당연히 대기업으로 성장해야 하며 이를 위해 신성장동력을 발굴하고 대규모 투자도 해야 한다. 많은 중견기업이 사내유보금을 열심히 쌓는 게 이 때문인데 여기에 과세한다니 정부가 나서 성장 사다리를 걷어차는 꼴이다.
중소기업은 고용 여력이 없고 대기업은 해외에서 고용을 늘린다. 우리 경제의 현안인 일자리를 창출할 주역은 중견기업이다. 이들이 적극적으로 고용을 늘리면서 회사를 키워나갈 때 미래를 책임질 신성장동력 산업도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정부는 중견기업 육성정책을 전면 손질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