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외국 자본은 국내기업의 경영방식이 불만스러울 때마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들먹인다.
한마디로 국제기준에 미달됐다며 빨리 바꾸라는 요구다.
가장 빈번하게 요구하는 개선사항은 ▦소수주주 권한강화 ▦적대적 M&A활성화 ▦주주이익ㆍ수익성 극대화 등이다.
그러나 정작 외국기업은 이 같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너무 쉽게 무시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극단적인 경우는 ▦소수주주의 권리를 제한하고 ▦경영권 방어를 위해서는 기기묘묘한 정관을 도입하며 ▦주주보다는 종업원의 이익을 최우선 고려하겠다는 점을 문서화하고 있다.
◇주주들 경영참여 꿈도 꾸지마라=월스트리트의 대표적인 투자은행으로 M&A(재정자문분야) 시장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28.8%), 국내 M&A시장에서도 1위(2000년 이후 시장의 17.62%, 중개금액 18조1,395억원)를 차지한 골드만삭스는 악명높은 정관을 갖고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골드만삭스가 지난 1999년 미국 증시에 상장할 때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정관에 따르면 경영권 변동이나 정관변경 등 중요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임시주총을 이사회의 과반수의 결의로만 가능하도록 했다.
한마디로 대주주 또는 현직 이사회가 아닌 여타 주주들은 죽어도 기업경영에 간섭하지 마라는 강력한 방어벽이다.
‘주식투자의 황제’로 꼽히는 워렌버핏 역시 소수주주에 대해서는 차등대우하고 있다. 그가 최대주주로 있는 워크셔헤더웨이는 차등주식제도를 도입해 버핏의 주식은 일반 주주의 주식보다 의결권은 200배, 배당권은 30배나 많다.
지난 8월에 기업공개를 한 구글(Google)도 창업자에게 보통주보다 의결권이 10배나 많은 차등주식을 줬다. 구글의 기업문화 보호와 경영권 보호가 소수주주권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한국만의 글로벌 스탠다드?=정부의 외자유치 노력이 심화되면서 국내 공개기업들은 외국자본의 요구에 맞춰 주주들 앞에 모든 것을 노출시켰다.
특정인이 해당기업의 지분 0.01%만 있으면 이사회 등에 대해 대표소송을 청구할 수 있다. 0.05%가 넘으면 위법행위유지(금지)청구권을 요구할 수 있으며, 0.1%면 회계장부열람이 가능하다.
나아가 지분이 0.5%만 되도 이사해임을 청구할 수 있고, 3%면 임시주총 소집을 요구해 경영진을 바꿀 수 있다. 10%가 넘을 땐 아예 회사해산이나 정리개시 신청도 할 수 있는 권한이 법적으로 부여돼 있다.
반면 미국의 많은 기업이 차등주식제도를 통해 경영권에 대한 도전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고, 독약조항(포이즌 필)을 통해 사후적인 방어전략을 구축해 놓고 있다.
골드만삭스도 적대적M&A 위협 등 이사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주주승인없이 우선주를 발행할 수 있도록 했다. 세계적 기업인 GE도 주주들이 반대했지만, 이사회가 단독으로 주식을 발행할 수 있는 규정을 마련했다.
외국 자본은 국내 기업에게 툭하면 주주이익ㆍ수익성 극대화를 강조하면서 상시적인 구조조정과 비용절감 등을 요구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그러나 이사가 경영에 대한 판단을 내릴 경우, 주주 뿐만 아니라 종업원ㆍ파트너ㆍ지역사회 등에 미칠 영향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결정해야 한다고 정관에 명시해 놓았다. 이 규정은 골드만삭스뿐 아니라 숱한 미국기업들이 당연한 듯이 도입해 놓은 내용이다.
경영권을 악착같이 보호하려는 그들이 세계화한 것인지 투명경영을 내세운 우리가 세계화한 것인지 헷갈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