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사우스 폴(South Pole)`이라는 의류 브랜드는 재미 교포 김대원씨(미국명 데이비드 김)가 운영하는 위키드 패션 소유의 독자 브랜드다. 사우스 폴은 지난 4월 미국 최대 의류 백화점 JC 페니가 자사에 공급하는 전세계 수천개 브랜드 가운데 으뜸으로 뽑아 `2003년 공급업체 대상`을 받아 미국 소비시장과 의류업계에 큰 뉴스가 되기도 했다. JC 페니는 사우스 폴이 `창조적, 대중적, 상업적`이라는 자사의 모토에 걸맞는 브랜드였기 때문에 수상을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사우스 폴은 연초에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에 대형전광판을 설치, 그곳에 전광판을 설치한 한국 굴지의 삼성전자, LG전자와 함께 세계 최고급 브랜드의 광고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이 회사는 미국 경제가 불경기에 허우적거리는 가운데서도 매년 50% 이상의 성장을 기록했다. 경영진의 얘기를 들어보면 매출이 지난해 1억4,000만 달러에서 올해는 2억2,000만 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성공은 한국 내에서 이뤄졌다고 해도 대단한 일이다. 하물며 모든 것이 낯설은 미국 시장에서 한국인이 성공한 비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섬유 회사들이 70년대 이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기업인의 사명감과 결의 그리고 시의에 맞는 과감한 투자 결정이었다. 이에 못지않게 강조되어야 할 것은 국가적인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었다.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국민적 결의로 수출기업에 대해서는 금융 세제면의 혜택은 물론 공단 조성등 정부가 가능한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수출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산업역군으로서의 자부심도 대단했다. 물론 근면하고, 저렴했던 노동력의 뒷받침이 중요 했던 것은 부인 할 수 없다. 미국 기업인 사우스 폴은 과거 한국 수출산업이 누렸던 사회적 지원을 조금도 받지 못하고, 미국이라는 고도의 경쟁 시장에서 독자 브랜드를 내놓아 일류로 올라섰다는 것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미국은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는 나라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치열한 경쟁을 해야 살아남을수 있는 곳이다. 한국에선 사양산업으로 꼽히는 섬유 업종이 미국의 치열한 경쟁 속에 성공한 비결이 무엇일까. 김사장은 70년대에서 90년대까지 세계 시장을 석권했던 섬유 강국 한국의 노 하우와 축적된 경험이 기초가 되었다고 말한다. 미국 흑인들에게 유행하던 힙합 의류를 도시의 백인층은 물론 히스패닉, 아시아인도 입을 수 있도록 `트렌드 베이식(trend basic)`이란 새로운 쟝르를 만들어 시장을 공략했다. 의류 사업의 핵심은 시장파악, 디자인개발, 생산, 판매 그리고 적기 공급(delivery)에 대한 관리능력이다. 시장 파악은 김 사장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의류 도ㆍ소매업을 운영하는 한인 상권의 정보를 기초로 시장의 트렌드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리드할 아이디어를 개발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이디어를 상품화하는 과정에 30명의 디자이너가 한국에서 초빙되어 근무하고 있다. 맨해튼 패션가에 활약하는 한인 디자이너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인데, 한국인들의 의류 디자인 능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디자인을 제품으로 만드는 생산공장은 한국, 베트남, 중국,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로 다변화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생산 공장들도 한국 기업인이 경영하는 회사다. 이 회사는 전세계에 퍼져 있는 생산 공장의 원부자재도 한인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있다. 판매활동과 회사 관리도 이제까지는 한국 의류사업의 축적된 노하우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미국식 경영 노하우와 효율성을 적극 도입하고 있지만, 한때 세계시장을 석권했던 한국 섬유산업의 실력과 경험이 오늘 미국에서 성공한 기초가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하던 70년대와 80년대에 수출을 리드했던 산업 부문은 의류ㆍ직물 등 섬유산업, 신발, 합판, 가발 등 경공업제품 등이다. 수출 비중이 중화학 제품이나, 전기, 전자, 자동차, 반도체 등으로 옮겨 가면서 과거의 수출 주력 산업은 잊혀지거나 사양 산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한때 세계시장을 석권했던 산업 분야에 쌓여진 노하우와 경험 그리고 풍부한 인적자원은 한국 경제의 자산이자 보고임에 틀림없다. 이 보고를 잘 활용할 경우 우리는 많은 제2, 제3의 사우스 폴을 기대할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수십년 힘들여 쌓아 놓은 보고를 기반으로 해서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서 크게 성공하는 한국 기업인이 많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런 기업이 많이 생겨나면 미국에서 자라나는 한인 1.5세나 2세들에게도 자부심과 높은 꿈을 심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김영만 재미 한국상의 명예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