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서구 언론의 두 잣대

이코노미스트ㆍ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서구의 주요 언론을 볼 때면 종종 다른 문화권을 가르치려 든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중국을 위시한 신흥국 파워가 확대되고 2008년 금융위기, 유럽 재정위기를 거치며 기세가 한풀 꺾였음에도 '우리가 모범'이라는 미국·유럽의 태도는 여전하다.

인도의 루피화 가치 폭락을 계기로 신흥국의 위기감이 크게 높아진 요즘 이들의 훈수는 계속되고 있다. WSJ는 사설에서 태국의 정정불안과 인도네시아의 자원민족주의를 지목하며 "아시아 신흥국은 무질서와 혼란을 극복하고 투자자에게 믿음을 줄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한술 더 떠 인도가 조기 총선을 실시해 강력한 구조개혁을 추진할 지도부를 뽑아야 한다는 구체적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80살인 만모한싱 인도 총리는 당면한 위기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늙었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 역시 "글로벌 양적완화로 싼 자금이 밀려올 때 구조개혁을 했어야 했다"며 아시아 신흥국의 '게으름'을 탓했다. 그나마 FT는 1990년대 중후반 불거진 외환위기를 통해 아시아 국가들이 단련이 된 만큼 이번에는 위기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상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에서 미국의 뉴욕타임스(NYT)까지, 외신들의 주장은 한결같다. 현재 신흥국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근본적 이유는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보다도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경제구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제도·정책이 서구와 같은 수준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이들이 던지는 훈수가 모두 틀린 것은 아니다. 양적완화 축소는 신흥시장의 자금 엑소더스를 일으킨 방아쇠에 지나지 않으며 상당수 신흥국이 과도한 규제와 부패ㆍ정정불안 등의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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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기자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점은 '투자자'에 대해서는 서구 언론이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적완화를 등에 업고 전세계에 자산버블을 일으켰다가 출구전략 신호가 울리자마자 썰물처럼 빠져나가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탐욕을 탓하거나 이러한 탐욕을 제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는 등의 지적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신흥국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세계 금융시장을 어지럽히는 '글로벌 투자자'에 관대한 서구 언론들의 행태가 씁쓸할 뿐이다.

이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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