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KISTI의 과학향기] 과학과 전쟁의 결합

과학이 만든 전차·기관총·핵무기등 힘의 불균형 초래 전쟁방식도 바꿔


1592년 4월17일 조선 조정에 경상좌수사 박홍의 급보가 날아든다. 대규모 왜군이 같은 달 13일 부산에 상륙했다는 내용이었다. 임진왜란의 시작이었다. 조선군은 분전했지만 참혹한 패배를 당한다. 패인은 왜군의 '조총'이었다. 과학은 군사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시도와 꾸준히 만났고, 매번 통치권자의 기대에 부응하는 '작품'을 내놓았다. 시대를 압도하는 치명적인 무기의 탄생은 '힘의 불균형'을 초래해 그 무기를 가진 자를 절대 강자로 만들었고, 그 동안의 전쟁 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역할을 했다. 힘의 불균형을 초래한 대표적인 무기 중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건 전차다. 기원전 1800년 경 남부 중앙아시아에서 본격 등장한 전차는 말을 동력원으로 한 탓에 엄청난 힘으로 고속 기동을 할 수 있었다. 근거리에서 칼과 창을 휘둘러야 하는 보병은 전차가 대열로 돌진해오는 장면만으로도 전투 의욕을 잃었다. 보병 위주의 군대 편제를 유지하던 주변 국가들에 전차는 감당할 수 없는 위협이었다. 과학과 전쟁의 결합은 중세 유럽에서도 이어진다. 주인공은 백년전쟁에 나선 영국군의 장궁이다. 길이가 2미터에 이르는 이 대형 활은 1415년 프랑스 아쟁쿠르에서 갑옷으로 중무장한 프랑스 기사들의 가슴에 연거푸 화살을 꽂았고, 프랑스군은 1만 명의 전사자를 내며 패퇴할 수밖에 없었다. 상당수 병사들은 무려 200미터 앞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이는 당시 보통 화살의 유효 사거리인 100여 미터를 훌쩍 뛰어넘는 것이었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과학이 만들어낸 군사능력은 기관총 출현으로 이어진다. 1898년 수단에서 현지인들과 영국군이 충돌했을 때 기관총은 그 '끔찍한' 위력을 증명했다. 500명에 불과했던 영국군은 1만4,000명의 현지 무장봉기 세력을 맞아 단 40분 만에 1만1,000명을 주검으로 만들었다. 과학이 일군 가장 거대한 군사적 성과는 핵무기다. 핵무기는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 상공에서 가공할 성능을 입증한다. B-29 폭격기가 떨어뜨린 한 발의 폭탄에 12만7,000명이 죽고 도시의 60%가 파괴됐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과학이 전쟁에서 커다란 역할을 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헬리콥터와 탱크, 박격포 등이 미래 전장에서 쓰일 것을 예견했다. 그리고 그 무기를 스케치했다. 15세기의 상상력으로 그린 것치곤 현대 실제 무기들과 무서울 만큼 흡사하다. 흥미로운 건 그가 무기 개발기록을 공책에 거꾸로 적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뭔가를 기록할 때 누군가 어깨 너머에서 '사탄적 지식'을 훔쳐볼까 두려웠다"고 말했다. 전쟁과 과학의 결합을 걱정한 그의 심정을 헤아려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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