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쿨(cool)한 정치


10년 전부터 젊은이들에게 유행처럼 퍼져나간 게 쿨(cool)하게 사는 것이다. 쿨하게 사랑하기, 쿨하게 이별하기, 쿨하게 사과하기처럼 쿨하다는 것은 대체로 집착을 버리거나 자신을 양보하는 뜻이 포함돼 멋지고 좋다는 의미로 쓰이게 됐다. 물론 때로는 글자 그대로 차갑게 바라보는 경우에도 쓰인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정치를 쿨하게 대한다고 할 때에는 아쉽게도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뜻한다.

젊은 세대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게 된 것은 1970~1980년대처럼 민주화라는 공동목표가 없어졌고 취업난 같은 현실 문제가 절박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정치 자체가 쿨하기는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회의 온갖 이해와 대의명분, 정당이나 정파의 입장, 정치인 개인의 성취욕 등이 뒤엉켜 열기를 뿜는 것이 정치현장이다. 근본적으로 정치는 핫(hot)한 것이다.


한때 우리 정치무대에서는 말싸움은 기본이고 멱살잡이에 해머ㆍ최루탄까지 등장하기도 했었다. 핫도 부족해서 소핫(so hot)한 정치를 보면서도 쿨하게 되려면 냉소적이 되거나 시큰둥해질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게다가 하루하루 힘겨운 삶을 이어가는 서민들에게 정치현실은 기본적으로 먹고사는 것과는 별반 상관이 없는 '그들만의 리그'로 비쳐질 때도 많다. 여야 간에 첨예하게 대립했던 대형 이슈들이 민생과는 관계없이 이념과잉과 이에 따른 대립전선에 불과했던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여도 아니고 야도 아닌 무당파 층이 점점 늘어나 최근 수년간 20% 중반대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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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뜨겁게 끓고 있는 열전의 현장에서도 또는 이리저리 실타래처럼 뒤엉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정국에서도 무더운 여름에 한줄기 소나기같이 시원한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정치 역사상 가장 쿨한 장면 중의 하나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패한 박근혜 후보의 승복선언일 것이다. 경선이 본선보다 더 어렵다고 할 만큼 치열했고 또 여론조사 반영비율을 놓고도 논란의 여지가 있었으며 대의원 투표에서는 이겨서 당심에서는 앞섰는데도 승부 결과에 깨끗이 승복함으로써 온 국민을 감동시켰다. 그때의 쿨한 모습은 박근혜 후보의 정치적 자산이 돼 5년 후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데 큰 밑거름이 됐다고 본다.

2012년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김무성 의원이 탈당 후 무소속 출마와 불출마 사이에서 고뇌하다가 우파진영의 대선 승리를 위해 탈당을 접고 백의종군을 선언한 것도 쿨한 정치의 모습으로 기억될 만하다. 그때의 그런 결단이 김 의원을 더 큰 정치인으로 각인시키게 됐다.

결국 쿨한 정치에는 자기희생과 양보가 따른다. 눈앞의 이익보다 멀리 내다보며 더 큰 공동체를 생각하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정당과 의회, 대의정치가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받으려면 지금보다는 더 쿨한 모습이 많아져야 한다. 가장 뜨겁게 싸우다가도 가장 냉철하게 양보하고 타협하면서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일이 많아진다면 국민들은 우리의 쿨한 정치에 더 많은 사랑을 보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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