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정치권이 31일 통과시킨 새해 예산안은 정부안에 비해 1조8,805억원 감액돼 재정건전성 측면에서는 일단 긍정적이다. 그러나 세계경기 측면에서 경기 활성화가 필요한 시점에 재정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6·4지방선거 이후 하반기 즈음에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경제통 의원들과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여야는 이날 정부의 새해 예산안(357조7,000억원)에서 정부 예비비, 4대강 사업, 새마을운동 등 총 5조4,046억원을 감액하고 무상보육 보조 확대, 학교 전기료, 경로당 냉난방비, 사병 급식비 지원 등 총 3조5,240억원을 증액했다.
감액·증액작업을 거쳐 진통 끝에 확정한 새해 예산안 355조8,200억원은 추경예산을 포함한 2013회계연도 예산안 349조원에서 6조8,200억 정도밖에 늘어나지 않은 것이다.
이는 올해 세수가 정부의 당초 목표치보다 10조원 안팎이나 덜 걷힐 것으로 예상되는데다 내년에도 경제상황이 녹록지 않아 세수가 급격히 늘어날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을 바탕으로 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관계자는 "정부 예비비 감액이 큰 요인이기는 하지만 재정적자 확대와 세수감소 추세를 감안해 이번에 예년보다 감액규모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감액·증액을 분야별로 보면 우선 감액의 경우 지방에 지원하는 부가가치세 전환율을 5%에서 11%로 높이는 지방세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에서 통과되며 취득세 인하에 따른 지방세수 감소 보전용으로 잡아놓은 기획재정부 예비비 1조8,000억원과 지방교부금 8,200억원을 줄일 수 있게 됐다. 여기에 대선개입 논란을 낳은 국가정보원, 군 사이버사령부 등 국가기관의 특수활동비와 홍보예산이 깎였다. 야당의 강한 반대로 4대강 사업과 새마을운동 예산도 손을 봤다. '우편향 안보교육' 논란에 휩싸인 국가보훈처 사업도 일부 감액됐다.
반면 6·4지방선거를 의식해 복지예산과 지방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늘었다. 항목별로는 쌀값 보전과 0~5세 무상보육 보조, 학교 전기료, 경로당 냉난방비·사병 급식비, 지방 SOC 사업 등이 증액됐다.
쌀값 보전의 경우 쌀 목표가격이 80㎏당 18만 8,000원으로 당초 정부안(17만4,000원)에 비해 한 가마당 1만4,000원이 높아지면서 지원액이 늘게 됐다. 쌀 목표가는 산지 쌀값이 목표가를 밑돌 경우 차액의 85%를 보전해주는 제도로 농민과 야당은 수년동안 물가가 급등하는데 쌀값은 정체돼 있었다며 인상을 요구해왔다.
또 전국 6만2,000개 경로당의 냉난방비와 양곡비 지원에 596억원, 사병들의 급식 쇠고기를 수입산에서 국산 육우로 바꾸는 데 110억원 등이 늘었다.
여야는 예산 통제와 함께 재정건전성 확충을 위해 예산 부수법안인 세법개정안을 이날 최종 합의할 때도 세수증대에 신경을 썼다.
과표 개인소득세 최고세율 38% 적용범위를 현행 3억원 초과에서 1억5,000만원 초과로 확대하고 과표 1,000억원 이상 대기업의 최저한세율(비과세·감면 등을 받고도 최소한 내는 세율)을 16%에서 1%포인트 높여 연 6,100억원 이상의 세수증대가 이뤄지도록 조치했다. 이는 정치권이 이익집단에 휘둘려 각종 비과세·감면 축소법안에 제동을 걸면서 연 수천억원 규모의 세수감소 우려를 벌충하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날 여야가 확정한 새해 예산안을 총수입 측면에서 보면 369조3,000억원으로 정부안(370조7,400억원)보다 1조4,400억원 감소했다.
여야는 앞서 지난 12월21일까지 감액심사를 1차로 마무리하고 22일 증액심사에 돌입하며 치열한 예산전쟁을 본격화했다. 여야는 30일 심야에 쌀 목표가격 협상을 마무리하며 사실상 새해 예산안의 감액과 증액작업을 일단락 지었다. 앞서 상임위원회 예비심사 단계에서 정보위원회를 제외한 15개 상임위가 정부 예산안보다 10조원 가까운 증액요구를 한 가운데 예결위 예산안조정소위에서 상임위의 삭감요구(1조4,725억원)는 받아들였지만 증액요구(11조4,155억원)는 거의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회 예결위 김광림 새누리당 간사는 "대통령 공약 이행과 서민·취약층 지원에 초점을 두고 복지와 농업예산, 지방 SOC 예산을 다소 배려했다"고 말했다. 이한규 민주당 예결위 전문위원은 "0~5세 보육사업 국고보조율 인상, 무상급식 예산 국고지원 등 복지예산과 취약한 농민의 쌀값보전 등에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벌써 일부 경제통 의원을 중심으로 추경편성이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경제통인 이한구 의원은 이날 기자와 만나 "이렇게 정부가 목표한 만큼 세수가 안 걷히다 보면 내년 하반기에는 국채를 발행해 추경편성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따라서 새해에는 정부가 세수확대를 위해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등에 대한 징수를 강화하고 벌금·과징금 등을 걷는 데 치중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 예결위의 김광림·최재천 간사는 예산안 통과 뒤 관행적으로 예결위 차원에서 떠났던 외유를 하지 않는다고 선언해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