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벌어지고 있는 글로벌 통화전쟁은 다분히 '근린 궁핍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자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달러를 무제한 풀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존의 양적완화를 중단하는 한편 금리인상을 통해 통화환수에 나설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가 하면 일본은 연간 본원통화 공급을 60조∼70조엔에서 80조엔으로 늘리겠다면서 더욱 공격적인 유동성 살포작전을 벌이고 있다. 유럽중앙은행도 이에 질세라 양적완화를 시사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신흥국으로 흘러갔던 막대한 달러화가 일시에 빠져나갈 수 있는데다 엔화나 유로화 가치 하락으로 경쟁 상대국들의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제9차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이에 대해 "주요 선진국 통화가치의 쏠림 현상은 일부 신흥국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그동안 침묵을 지켜온 우리 정부가 마침내 국제무대에서 엔저 쓰나미가 몰고 올 통화전쟁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나 엔화의 급격한 평가절하는 한국 경제에 치명적이다. 한국의 대중(對中) 수출 가운데 일본과 경쟁하는 품목이 75%나 되는데다 엔저로 수익성이 크게 개선된 일본 기업들이 수출 가격까지 내릴 경우 국내 기업들은 막대한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각국의 통화전쟁은 이제 변수가 아니라 상수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우리 내부에서 경상흑자폭을 관리해 원화 가치 상승 압력을 누그러뜨리든가 국내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품질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야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국제무대에서의 정책공조에도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대로 각국 통화정책이 신중히 조정되고 명확히 소통돼야 하며 G20이 이런 정책공조에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은 이런 점에서 시의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