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中企 성장판 작동돼야


'9988'이라는 말이 있다. 고령화 시대 99세까지 건강(88)하게 살아보자는 뜻도 있지만 우리 중소기업이 전체 사업체 수의 99%를 차지하고 고용 비중도 88%에 달해 중소기업 위상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 중소기업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지만 최근 몇 년 새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상대적으로 대기업은 실적이 좋다 보니 양극화가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가 됐고 정책 초점도 여기에 맞춰졌다. 기술력으로 글로벌 경쟁력 확보 대ㆍ중소기업 동반성장 논의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잘되는 방향으로 가자고 시작된 일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대기업으로부터 피해를 보는 기업이고 대기업은 중소기업 지원에 인색한 기업으로 비춰질까 걱정이다. 대기업과 협력관계에 있는 중소기업이 전체 제조업의 20% 정도인데 문제의 본질을 대기업과의 관계에서만 찾아야 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대기업ㆍ중소기업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데 익숙했고 기업정책도 대기업은 규제, 중소기업은 지원하는 식으로 해왔다.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과 품질로 경쟁하는 상황에서 대기업ㆍ중소기업으로 나눠 편 가를 일은 아니라고 본다. 제조업ㆍ서비스업이 결합되고 개별기업 간의 경쟁 대신 기업 협력을 통한 네트워크 경쟁시대에 오히려 이러한 구분이 기업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경제활력과 성장동력 창출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중소사업체 가운데 제조업체 수는 지난 2000년 30만개에서 2009년 32만개로 늘어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왔다. 그러나 같은 기간 대기업체 수는 약 800개에서 580개로 28% 줄었다. 기업이 정상적으로 성장했다면 중소기업이 중견기업, 그리고 대기업으로 발전해 지금보다 많은 대기업이 나와야 하는데 상황은 반대다. 이렇게 된 데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으로 떨어졌거나 도산했기 때문일 수 있다. 중소기업도 생존에 급급해 사업 확장과 같은 적극적인 경영을 할 여력이 없었을 수 있다. 한편으로 160가지 정책지원을 받기 위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보다 기업을 여러 개로 쪼개 중소기업으로 남으려는 점도 없지 않았다. 이제 시야를 넓혀 보자. 양극화와 고용 없는 성장 문제를 해결하고 경제의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문제로 축소해서 고민할 일이 아니다. 성장동력 창출 능력을 갖춘 새로운 기업군, 다시 말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견기업이 많이 나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다행히 지난해 3월 중견기업육성대책이 발표됐고 올 3월에는 중견기업 정의와 지원 근거를 담은 산업발전법이 개정됐다. 또 올해부터 오는 2020년까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중견기업 300개를 육성하기 위해 '월드클래스 300'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건강한 산업 생태계가 형성될 때 경제성장도 견실하게 이뤄지는 법. 이제 중소기업이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커 나가야 한다. 중소기업 스스로도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세계시장을 향해 기술력을 인정받는 글로벌 중소기업이 될 때 중견기업으로 커 나갈 수 있다. 지난 10년간 중소기업 수출 비중이 10%포인트가량 줄어든 것은 중소기업 스스로도 되짚어 볼 일이다. 중견기업 육성 요건 구축 필요 대기업도 중소기업이 취약한 분야로 지적되는 디자인, 해외시장 진출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외국 중견기업 가운데는 가족기업이 많다. 우리나라도 대를 이어 경영하는 중소‧중견기업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가업상속제도를 손질해야 한다. 우리보다 앞서 2008년 프랑스가 경제현대화법을 도입해 중견기업 범주를 신설하는 법을 제정했다. 타 범주 기업군에 비해 성장성과 고용창출 효과가 높은 중견기업을 더 많이 육성해 경제활력을 찾아보자는 목적이다. 몇 년 뒤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 중 누가 더 좋은 성과를 거둘지 지켜볼 일이다. 결과의 과실과 책임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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