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경제소사/2월24일] 그레고리력
법률가 출신인 교황은 신교도 1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위그노 대학살에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종교적 신념을 억압하는 데 일생을 보내고 예배당 축조를 위해 바티칸의 재정을 파탄으로 몰아넣었음에도 그의 이름은 역사가 존속하는한 영원토록 이어진다. 그레고리 13세. 시간을 규정한 달력 속에 그는 살아 있다.
1582년 2월24일, 그레고리 13세는 새로운 역법을 도입하는 칙령을 내린다. 그레고리력을 만든 이유는 1년에 11분14초씩 발생하는 율리우스력의 오차 때문. 달력령 시행으로 율리우스력은 같은 해 10월4월을 마지막으로 폐지됐다.
그레고리력의 첫날은 10월15일. 10일을 건너 뛴 이유는 누적된 오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갑작스런 날짜 변경은 저항을 불렀다. ‘천국의 성자들이 날짜를 혼동해 기도를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평 속에서 ‘사라져버린 10일’을 되찾기 위한 폭동까지 일어났다.
그레고리 13세는 ‘신의 뜻’을 앞세워 밀고 나갔다. 새로운 달력을 강행해야 할 다른 이유가 있었으니까. 발흥하는 신교를 누르기 위해서는 권력기반의 강화가 필요했다. 새로운 역법은 힘을 집중시켰다. 시저가 로마력을 율리우스력으로 바꾼 이유와 비슷하다. 예나 지금이나 표준은 곧 힘이다.
그레고리력 이후에도 시간은 제각기 흘렀다. 가톨릭 국가들은 즉각 그레고리력을 채택했지만 신교국은 외면했다. 영국은 1752년까지, 러시아 등 동방정교 국가들은 20세기 초반까지 율리우스력을 썼다. 아시아권은 태음태양력을 사용했다. 20세기 초반에서야 그레고리력은 전세계에 퍼졌다. 인류가 동일한 시간의 법칙을 공유한 게 100년이 채 안되는 셈이다. 우리나라가 그레고리력을 채용한 시기는 갑오개혁 이듬해인 1895년이다.
/권홍우ㆍ정치부장
입력시간 : 2005-02-23 1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