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IMF사태 때 우리의 목줄을 쥔 사람은 바로 외국의 신용평가기관이었다. 그들의 평가 여하에 따라 나라가 깨질수도 있었고 기업 그리고 금융기관이 하루 아침에 풍비박산 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온 천하가 외국 신용평가기관 앞에서 벌벌 기다시피 했었다. 그들의 신임을 회복하기 위해 못할 짓도 많이 했다.그로부터 2년이 지난 오늘, 정치권의 목줄은 시민단체의 손에 쥐어져 있다. 그들이 벌이는 낙천·낙선운동 앞에서 정치권이 벌벌 떨고 있다.
시민단체의 활동을 외국 신용평가기관에 견주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겠으나 투자 대상과 입후보자를 일정한 선별 기준에 맞추어 평가하는 점은 엇비슷하다 하겠다. 물론 다른점도 있다. 신용평가기관은 오로지 평가에 전념할 뿐 그 평가를 참고하고 안하고는 고객의 선택에 맡기는 데 반해 시민단체는 그들의 평가에 따라 행동하도록 유권자에 대해 도의적 압력을 가한다. 바로 이 실천적 압력이 시민단체의 힘의 원천이기도 한데 동시에 이 힘은 시민단체를 해치는 칼이 될 수도 있다.
시민단체가 장차 겪게 될지도 모를 위험은 첫째 낙천·낙선 대상자로 지목한 사람들이 상당수 국회의원으로 공천 혹은 당선되는 경우이다. 시민단체의 권고가 개개의 유권자에 의해 묵살되는 꼴이 된다.
둘째로는 정반대로 낙천·낙선 대상자가 대부분 물갈이 되는 경우이다.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되는 사람을 지목하여 물갈이를 실현했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할 지 모르지만 소선거구제 아래에서 특정후보에 대한 명시적 반대는 상대후보에 대한 묵시적 지지를 의미하기 쉬우며 따라서 시민단체의 뜻대로 선거가 결말난다는 것은 곧 시민단체가 국회의원 심사 및 선발기관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쉽다.
셋째로는 그렇게 물갈이 된 국회가 또다시 국민의 뜻을 저버리는 짓을 자행할 때 이번의 선거혁명을 주도한 시민단체의 체면과 책임이 어찌 되겠냐는 것이다.
시민단체의 정치활동에 관해서는 참여의 한계와 방법론의 선택 그리고 그 실제적 효과를 에워싸고 찬반의 시비가 많다. 한가지 참고할 점은 외국 신용평가기관이 조사 대상자의 신용상태를 평가하고 경고할 뿐 스스로 투자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야 객관성이 확보된다. 반면 참여엔 항시 책임이 뒤따른다. 그래서 시민단체의 도덕적 설득력은 오히려 참여에서보다는 비판자로 남음으로써 더욱 강화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