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기업공개(IPO) 기업의 가치분석을 제대로 하지 못해 공모가가 밴드를 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IPO 유치경쟁이 과열로 치달으면서 증권사들이 공모기업의 눈치를 보기 때문으로 적절한 평가를 받지 못한 기업의 상장 후 주가 흐름은 천차만별이어서 투자자들의 혼란만 커지고 있다.
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IPO 시장에서 주관 건수 1위인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8개 기업 가운데 3개 기업의 공모가가 공모가 밴드 최하단보다 낮게 결정됐다.
한국증권이 주관한 에이디테크놀로지는 지난 1~2일 진행된 수요예측에서 희망공모가 밴드 1만6,000~1만8,000원을 밑도는 1만5,000원에 공모가가 확정됐다. 공모가 최하단 미만을 제시한 기관들이 절반을 넘어 공모가가 낮은 수준으로 결정됐다. 지난달 수요예측을 한 SKC코오롱PI의 공모가는 희망가격(1만2,500~1만5,000원)을 크게 밑도는 8,000원으로 결정됐고 테라셈도 공모 밴드(3,600~4,100원)보다 낮은 3,000원에 공모가가 형성됐다. 이밖에 영우디에스피(키움증권 주관)가 수요예측에서 공모밴드 최하단 밑에서 결정됐다.
공모가가 공모 밴드를 밑도는 것은 IPO 주관 유치를 위해 공모가 결정주도권을 해당 기업에 내주고 가격 협상에서 끌려다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공모기업 입장에서는 높은 공모가를 원하다 보니 주관 증권사에 공모 밴드를 높여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증권사 간 IPO 주관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공모 기업은 자기 입맛에 맞는 증권사를 골라 일감을 주는 분위기"라며 "한국투자증권이 올해 무리하게 IPO 주관계약을 따내면서 기업 눈치를 많이 봤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공모가가 올라가 공모 규모가 커지면 그만큼 주관사가 수임하는 수수료 금액도 커져 증권사의 수익이 많아지는 구조도 일부 작용했다. 여기에 공모기업이 상장 후 채권 발행, 인수합병(M&A), 그룹사의 경우 계열사의 IPO 등 추가적인 거래를 따내기 위한 노림수도 있다.
또 다른 증권사 연구원은 "공모에 나서는 기업들은 직접적인 자금조달 규모가 결정되는 만큼 높은 밸류에이션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며 "증권사들은 기업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시장의 분위기 등을 고려해 적정 공모가를 찾아 주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IPO 주관 건수 2위인 우리투자증권(005940)의 경우 반대로 쿠쿠전자·파티게임즈 등 6곳의 IPO 기업 중 테고사이언스·윈하이텍·창해에탄올·데브시스터즈 등 4곳이 공모밴드 최상단보다 높은 가격에 공모가가 형성됐다.
문제는 기업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공모 기업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공모밴드를 벗어나 상장한 기업의 주가 움직임은 종잡을 수 없다. 예컨대 우투가 주관한 윈하이텍(공모가 8,300원)은 지난 7월25일 상장 첫날 상한가를 기록하며 1만5,250원에 거래를 마쳤지만 3일 7,930원의 종가를 기록했다. 공모 후 지금까지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면 손실률은 48%에 달한다. 한투가 주관한 테라셈(공모가 3,000원)은 지난 10월30일 상장 첫날 공모가 보다 8.8% 하락한 2,735원의 종가를 기록했다. 3일 종가는 2,715원으로 주가 움직임이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