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와 정부가 수소차 보급을 위한 로드맵을 새로 짠다. 현대차가 세계 최초로 수소차를 양산했지만 판매가 부진하고 정부의 정책 노력도 약했던 반면 도요타 같은 일본 업체들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판매를 시작하고 일본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현대차의 이번 작업은 한국과 일본 자동차 산업의 새로운 경쟁구도를 만들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현대차의 한 고위관계자는 24일 "정부가 수소차 로드맵을 새로 작성한다면서 현대차의 참여를 요청해왔다"고 밝혔다. 정부 고위관계자도 "환경부와 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와 공동으로 수소차와 충전소 보급 확대를 위한 로드맵을 올해 중 내놓을 예정인데 현대차도 참여시킬 것"이라고 확인했다.
환경부는 이와 관련해 지난 17일 '수소연료전지차 보급 및 충전 인프라 활성화 방안 연구' 용역을 위한 긴급 입찰공고를 냈다. 로드맵에는 수소차 판매의 핵심인 충전소 설치규제 완화와 수소차 보급목표 확대방안 등이 담길 계획이다.
특히 정부는 수소차 충전소 확대사업에 현대차가 직접 참여하게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지방자치단체가 수소차 충전소를 지을 때 50%를 부담하는데 현대차도 일정 부분 돈을 대는 구조다.
지금까지 정부는 오는 2020년까지 수소차 1,000대, 충전소 23기를 목표로 해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현재 43개인 수소차 충전소를 2030년까지 3,000개로 늘리겠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수소차 700만대를 팔아 세계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것이다.
수소차는 수소를 연료로 한다. 물 외에는 배기가스가 나오지 않아 친환경적이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시대가 열린 뒤 본격적인 수소차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지만 궁극적으로는 수소차로 가지 않겠느냐는 예상이 나온다.
수소차 보급을 늘리는 데는 충전소가 필수다. 휘발유차도 주유소 없이는 이용이 불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일본 정부가 수소차 충전소 1곳당 5억엔(약 46억5,600만원)이 드는 설치비용 가운데 최대 2억8,000만엔까지 지원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차와 정부가 함께 만들 로드맵도 충전소 보급 확대가 주요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정부는 충전소 설치 규제를 대폭 완화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에는 전국 13곳에 수소차 충전소가 있는데 안전요건 등으로 설립요건이 매우 까다롭다. 수소저장과 처리·압축시설의 경우 도로나 하천에서 10m 이상 떨어져야 하고 수소 충전소는 5m의 안전거리를 둬야 한다. 저장탱크는 내진설계도 필요하다.
정부 관계자는 "수소차 충전소 설치기준이 액화석유가스(LPG) 충전소보다도 까다로워서 도심은 불가능하고 사실상 외곽에만 세울 수 있다"며 "압축천연가스(CNG) 충전소는 도심에도 있는데 충전소 수를 확대하기 위해 규제를 완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충전소 설치와 관련해서는 관계부처와 협의해 그린벨트 규제도 풀어보도록 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충전소 보급을 위한 표준모델 개발도 추진된다. 1기에 약 30억원이 드는 충전소 설립사업에 현대차를 참여시키는 방안도 논의된다. 오는 2021년 이후로 돼 있는 일반인 보조금 지원개시 시점도 다시 따져본다. 현 수소차 보급목표도 재검토한다. 현대차가 지난달 수소차 '투싼ix'의 국내 판매가격을 1억5,000만원에서 8,500만원으로 43%가량 낮췄기 때문에 단순계산만으로도 보급대수가 최소 기존의 2배(2,000대 수준) 이상 돼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충전소가 확충되고 수소차 판매가 늘면 현대차의 수소차 경쟁력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현대차는 보조금이 지급되는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2013년과 2014년 두 해에 걸쳐 수소차 '투싼'을 200여대 파는 데 그쳤다. 그러나 도요타는 세단형 수소차 '미라이'의 구매예약 고객만도 최근 1,500명이 넘었다. 이대로라면 수소차 시장의 주도권을 일본에 넘겨줄 수밖에 없는 처지다.
실제 현대차는 특허 보유 수도 적다. 향후 기술표준 전쟁에서 불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현대차가 수소차 판매를 빨리 늘려 글로벌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현대차가 수소차 양산에서 가장 앞섰는데 이제 와서 일본 업체들에 시장을 뺏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가격 인하와 품질개선을 통해 수소차 시장을 선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