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농산물 세이프가드(ASG)는 아예 제외된 것으로 확인됐다. 쌀은 물론 마늘·사과·소고기 등 78개 농산물이 관세철폐 대상에서 빠졌지만 높은 관세장벽이 있어도 값싼 중국산 농산물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것을 감안할 때 국내 농산물 보호의 안전장치를 두지 않은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한중 FTA는 공산품 등도 동일상품에 횟수제한 없이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수 있게 돼 중국이 이를 악용할 여지도 남겼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12일 "한중 FTA에서 우리 농산물에 대한 방어를 많이 했기 때문에 농산물 세이프가드를 따로 두지 않았다"고 말했다.
세이프가드는 상대국 제품이 낮은 관세로 들어와 자국 산업에 심각한 피해를 줄 때 일정 기간 관세인상이나 수입량을 제한할 수 있는 조치다. ASG는 일반 세이프가드와 달리 농산물만을 대상으로 하는데 FTA 체결 때는 별도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한미 FTA는 물론 한·EU FTA에도 농산물 피해를 우려해 별도의 ASG 조항을 뒀다.
한중 FTA에서 ASG를 두지 않은 데 대한 우려감은 커지고 있다. 비록 '농림축산 주요통계'에서 생산액이 집계되는 85개 품목 가운데 78개가 개방에서 제외됐지만 관세율 장벽이 있음에도 값싼 중국산 농산물이 빠르게 국내 시장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농산물을 방어했다고 해도 보험 차원에서 ASG는 넣었어야 했다"면서 "농산물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다는 게 논란거리"라고 말했다. 지난 2000년 중국산 마늘이 싼 가격으로 들어와 관세율을 10배 넘게 높이는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적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이 같은 조치가 불가능해지는 셈이다.
우리가 공격적으로 나간 공산품의 경우 세이프가드 조항이 중국 측에 더 유리하게 타결됐다는 지적도 있다. 양국은 원하는 기간에 세이프가드를 횟수제한 없이 최대 2년, 동일 상품에 재발동할 수 있도록 했다. 관세철폐 대상에 포함된 항공기부품·반도체제조장비 등을 국내 기업이 잠식할 경우 언제든지 세이프가드로 수입을 제한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FTA와 비교해도 세이프가드 협정의 수준은 낮다. 중국은 뉴질랜드와의 FTA 협정 때 세이프가드 발동기간을 최대 4년까지로 규정하고 동일 상품에 대한 재발동을 금지했다. 발동기간도 관세철폐가 진행되는 기간으로 한정했다. 우리도 EU와의 FTA 체결 때 발동기간을 관세철폐 후 10년 이내로 한정했다.
아쉬운 대목은 또 있다. 지적재산권 보호는 한미 FTA 등에 비해 완화됐다. 저작권의 경우 한미 FTA와 한·EU FTA는 사후 70년간 보장하도록 했지만 한중 FTA는 50년으로 체결했다. 의료·제약 관련 특허는 특허심사 기간을 제외한 20년으로 한정했다. 이밖에 중국 정부가 국영기업 육성을 위해 자금지원 등 정책지원을 해도 이런 행위의 FTA의 경쟁협정 위반 여부는 제3국의 판단에 맡기도록 했다. 정부 관계자는 "경쟁협정 위반을 중국 법원에 제기해도 승소율이 낮고 투자자국가소송제(ISD)를 이용할 경우 중국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제3국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