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CEO&Story] 정문국 ING생명 사장

'100% 토종'이 외국계사 CEO만 세차례… "보험전문가일 뿐이죠"



MBA·해외서 생활한 경험도 없이 16년간 틈틈이 공부하며 실력 쌓아
평사원으로 시작해 CEO까지 올라
산업 통찰력·전략적 사고·실행력 '3박자' 갖춰야 진정한 리더의 모습
그날그날 밥벌이에 연연하는 직원, 주인의식 갖고 발전하는 자세 필요


직업이 최고경영자(CEO)인 이들이 있다. 유형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기업을 물려받은 사람들이다. 그룹의 승계자들이 그들이다. 이들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 평생을 CEO로 살아야 하는 운명을 안고 있다. 뻔한 이야기지만 승계 CEO가 될 확률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다음으로 자신만의 기업을 창업한 자들이다. 이들은 오너라는 점에서 기업승계자와 같지만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는 점에서 창업주라는 레테르가 붙는다. 창업 CEO가 될 확률 역시 낮다. 그래도 승계 CEO보다는 높다.

마지막으로 평사원으로 시작해 CEO가 된 자들이다. 전문경영인으로 통하는 이들은 우리네 범인들이 꿈꿀 수 있는 가장 가능성 높은 CEO 유형이다. 두 가지 세부유형이 있는데 평사원·임원·CEO를 모두 마치고 은퇴하는 자들이 있고 경영학석사(MBA) 등을 바탕으로 이른 나이에 전문경영인으로 활동하는 자들이 있다.

지난 7월 ING생명에 새 둥지를 튼 정문국(사진) 대표이사 사장은 마지막 유형 중에서도 좀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정 사장은 제일생명(현 알리안츠생명)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알리안츠·에이스·ING생명 등 3곳의 외국계 보험사에서 CEO까지 올랐다.

하지만 그에게는 그 흔한 MBA도 없고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도 전무하다. 그렇다고 남들이 다 알아주는 명문대(정 사장은 외국어대 네덜란드어과를 졸업했다)를 나온 것도 아니다. 그에게 '직업이 CEO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저 자신은 보험전문가일 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외국계 금융사 CEO를 여러 번 해서 해외파라고 생각을 하는데 첫 직장이었던 제일생명은 전형적인 한국기업이었어요. 외국에 산 적도 없습니다. 100% 국산인 셈이죠. (웃음)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았던 것이 지금의 제가 된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정 사장에게도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있었다. 외환위기가 국가 경제를 강타한 때였다. 당시 그는 제일생명 구조조정팀에 소속돼 매각작업을 주도했다. 매각 주관사는 글로벌 투자은행(IB)인 JP모건이었는데 거기서 평생의 동지를 만나게 됐다.

"매각작업은 성공적으로 끝났어요. 그때 JP모건의 매니징디렉터였던 프랭크 벰이 저에게 함께 일을 해보자고 하더군요. 당시에 일본과 한국의 많은 보험사들이 인수합병(M&A)시장에 나왔습니다. 제일생명 매각작업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글로벌 딜을 해보자는 것이었죠."

그렇게 해서 정 사장은 벰이 세운 허드슨인터내셔널어드바이저리의 한국대표가 됐다. 많은 고민 끝에 국내 보험사에서 IB로 옷을 바꿔 입었지만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곧이어 생존의 문턱이 찾아온 것이다.

"전 보험전문가가 되고 싶었어요. 보험산업을 잘 아니 글로벌 딜에도 자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제상황이 우리 비즈니스에 불리하게 돌아갔죠. 김대중(DJ) 정부 때였어요. 갑자기 정보기술(IT) 붐이 일었습니다. 경기가 살아나니깐 매물 가격은 올라가고 매수자는 줄어들고 당연히 딜이 성사될 리가 없었죠. 1년 반 만에 다시 변화를 선택해야만 했죠."

위기였지만 이번에도 시련은 금세 극복됐다. 비즈니스 파트너였던 AIG그룹이 정 사장에게 인베스트먼트 코리아 대표직을 제의한 것이다. 정 사장은 이후에도 여러 기업을 옮겨 다니면서 경력단절기를 겪지 않았는데 보험전문가로서 자신만의 무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실력입니다. 실력이 좋으면 전문가가 되죠. 전 늘 보험전문가로 불리길 원했습니다. 보험만큼은 자신 있어요. 어찌하다 보니 외국계 금융사에 몸을 담게 됐는데 한국기업에서 16년간 일하면서 틈틈이 영어를 연마한 게 주효했어요. 당연히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몰랐죠. 쓸 일도 없었던 영어를 공부해놓은 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남들은 평생에 한 번 하기도 어려운 CEO를 세 차례나 했으니 나름의 CEO 철학이 있을 법하다. 사전에 보낸 질문서에 그는 "산업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스스로 전략적 사고를 할 줄 아는 실행가"라는 자신만의 CEO 정의를 보내왔다. 처음에는 뻔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설명을 듣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세 개의 키워드를 제시하고 싶어요. 인더스트리(산업)에 대한 통찰력이 첫 번째입니다. 보험사 CEO라면 보험산업을 잘 알아야겠죠. 두 번째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죠. 마지막으로 실행력입니다. 아무리 전략이 좋아도 실행에 옮기지 못하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전 아직까지도 CEO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고 있는데 늘 이 세 개의 키워드를 자신에게 대입해봅니다. 확실한 건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그건 CEO가 아니라 'CEO 짓'이 된다는 거예요. CEO 짓은 아무나 할 수 있죠."

정 사장에게는 '구조조정 전문가'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알리안츠생명 사장 당시 성과급제 도입을 둘러싸고 노조와 8개월간 대립한 것이 강성 이미지로 해석된 것이다.

"구조조정 전문가란 평가에 저는 절대 동의할 수 없어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전 보험전문가일 뿐입니다. CEO로 재직하면서 단 한 번도 구조조정을 한 적이 없어요. 희망퇴직과 구조조정은 구분해야죠. 8개월 장기파업은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었기 때문에 불가피했습니다. 원칙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온전히 받아줄 수는 없습니다. CEO는 외로운 자리입니다. 직원을 내보내는 건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에요. 제 스스로 바닥에서 올라왔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압니다. CEO는 조직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바닥에서 시작해 CEO에 올라서일까. 정 사장은 직원들이 주인의식을 가져주길 희망했다. 오너와 같은 마음 자세가 있어야지만 자기계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관성에 젖어 밥벌이로서만 직무를 대하는 직원에 대해서는 낮게 평가했다.


"가장 싫어하는 직원은 이른바 '나인투식스(9 to 6·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로 대표되는 먹고 살기 위해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에요. CEO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정이 없는 CEO는 CEO 짓만 할 뿐이지 진정한 리더가 아닙니다. 전 직원들에게 로열티를 강조해요. 중요한 건 사람에 대한 충성이 아닌 조직에 대한 충성입니다. 혼이 있는 직원은 대우를 해줄 수밖에 없습니다. 오너와 같은 생각을 하는 직원이 돼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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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남은 목표를 물었다.

"일단 ING생명을 지금보다 나은 기업으로 업그레이드시켜야죠. CEO는 몇 년 있으면 떠날 사람이에요. 재임 때 기업이 정점에 도달하면 좋겠지요.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인가요. 제가 기업을 정점에 올리지 못하더라도 후임자가 왔을 때 제대로 경영할 수 있는 기반이 튼튼한 회사로 만들고 싶습니다. 당연히 지표를 좋게 만들기 위한 무리한 경영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제일 잘하는 게 보험이니깐 이곳을 떠나면 또 다른 보험 일을 하고 있을 거예요."

●정문국 사장은

△1983 한국외국어대학교 네덜란드어과

△1984 제일생명보험 비서실장

△1999 허드슨인터내셔널코리아 코리아 대표

△2001 AIG 글로벌인베스트먼트 코리아 대표

△2003 AIG생명 상무이사

△2004 알리안츠생명 신채널부문 부사장

△2007 알리안츠생명 대표이사

△2013 에이스생명 대표이사

△2014 ING생명 대표이사



PC오프제… 장기인센티브… 변화·속도 높이는 ING

설계사 역량 강화·채널 다각화 등 정문국 사장 '5대 프로젝트' 가동

ING생명은 최근 PC오프제를 도입했다. PC오프제는 회사가 지정한 시간에 맞춰 모든 임직원의 PC를 자동으로 종료시키는 제도다. ING생명은 내년 1월부터 한 달에 두 차례씩 시범 운영한 후 7월부터는 전면적으로 시행할 계획이다.

보험사로서는 최초다. 정문국 사장이 직접 PC오프제 도입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초과근무를 하지 말라는 건데 업무 몰입도를 높이고 일과 직장의 밸런스를 맞추라는 두 가지 의도가 담겼다.

정 사장은 "외국기업을 방문해보면 업무시간에 신문을 읽거나 커피를 마시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며 "그들에게는 근무시간에는 일만 하고 퇴근 후에는 개인적인 삶을 누리겠다는 이원적 사고가 몸에 밴 결과"라고 말했다.

정 사장은 취임 이후 약 5개월의 시간을 들여 변화과제 프로젝트를 완성했다. 임직원이 하나가 돼 머리를 맞대 전략을 짜냈다. 여기서 5대 변화과제를 도출했다. △설계사 채널 핵심역량 강화 △채널 다각화 △상품 차별화 및 경쟁력 강화 △전사 고객관리 강화 △직원업무 몰입도 강화 등이다.

정 사장이 특히 관심을 갖는 부문은 설계사 채널 강화다. 사실 지금은 일반화된 FC(Financial consultant·보험설계사)라는 용어를 국내에 처음 도입한 곳이 바로 ING생명이다. 정 사장은 "우리가 잘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라며 "보험설계사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금융전문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교육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ING생명이 보험설계사를 대상으로 업계 최초로 도입한 '장기인센티브제도'는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이 제도는 설계사들의 장기근속을 유도하기 위해 마련됐는데 회사가 설계사의 성과를 평가해 미래 인센티브 수령자격을 부여하고 3년 뒤 해당 설계사의 자격을 재검증해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예를 들어 1년간 실적을 바탕으로 매년 600명의 설계사를 대상자로 선정한다. 이후 영업성과, 활동기간, 25회차·37회차 계약유지율, 완전판매 여부 등의 잣대로 대상자를 재검증해 최종수령자를 확정한다. 이렇게 되면 설계사 정착률을 높이고 안정적이고 수준 높은 재무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게 정 사장의 판단이다.

정 사장은 "이 제도는 일회성 성과에만 포커스를 맞춘 단발성 인센티브 제도에서 벗어난 보험 업계 최초의 장기 인센티브제도"라며 "보험 업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사진=이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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