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난해 주로 농업부분에 대한 선-후진국간 갈등으로 결렬된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 재개를 앞당기기 위해 개발도상국 끌어안기에 적극 나섰다. 이를 위해 미국은 개도국 사이에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농업보조금을 `조기 완전 철폐`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는 특히 선-후진국간 대립 양상으로 비춰지고 있는 DDA 협상에서 미국이 유럽연합(EU)과의 공조체제를 벗어나려는 전략 변화로 해석되고 있다.
로버트 죌릭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12일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WTO 148개 회원국들에게 올 중반까지 협상 타결을 목표로 하는 일련의 계획을 담은 서한을 발송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FT는 이에 따라 올 연말께 홍콩에서 새로운 WTO 무역장관 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DDA 협상은 지난 2001년 시작됐으며 2005년 1월 1일이 마감시한이다.
죌릭 대표는 특히 “특정 시점에서 농업보조금을 완전 철폐하는 조치가 선행되지 않고는 최종 협상 타결은 불가능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해 농업보조금의 단계적 철폐를 주장했던 미국과 EU의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이는 미국이 DDA 협상을 조기 매듭짓기 위해 EU와의 공조체제를 구축했던 기존 전략에 수정을 가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지난해 9월 멕시코 칸쿤 회담 결렬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농업보조금을 당분간 높은 수준에서 유지하기 위한 미국-EU간 사전 합의가 농업보조금 삭감 수위를 높이려는 개발도상국들의 빈축을 샀기 때문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이 같은 전향적 입장 변화는 미국이 WTO를 축으로 한 다자협상을 배제하고 양자협상만으로는 유력한 통상 압력 수단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FT는 분석했다. 즉 칸쿤 회담 이후 지지부진했던 다자협상을 본격화 하려는 신호탄이란 것. 또 EU와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협상 고지를 점하기 위해 개도국들을 대상으로 펼치는 `당근책`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올 11월로 예정된 대선 일정 때문에 농업보조금의 조기 철폐를 시사한 미국측의 계획이 실현될 수 있을 지 여부는 불투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미 행정부가 그동안 농업 보호를 앞세워 농업보조금 철폐 시한을 늦추려 한 것은 사실상 표심을 잡기 위한 선거 전략적 측면이 강했기 때문. 이와 함께 표면적인 협상 결렬 이유가 됐던 공정경쟁 보장, 투자정책 등 이른 바 `싱가포르 이슈`에 대해 EU가 얼마만큼 양보 할 지도 협상 재개의 관건이라고 FT는 지적했다.
<김창익기자 window@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