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상징물은 무엇일까. 타지 사람들은 해운대ㆍ자갈치시장ㆍ광안대교 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부산시민들은 의외의 구조물을 2위로 꼽았다. 영도다리다. 지난 1998년 부산시의 설문조사 결과가 이렇게 나왔다. 바로 옆에 더 넓고 긴 부산대교가 있지만 오랜 세월에 부산 사람들과 애환을 함께한 녹슨 다리를 따라오지는 못했다.
△일제가 대륙 침략의 교두보로 삼기 위해 1934년 개통한 영도다리는 부산항과 영도구를 잇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상가교. 원래 평범한 다리로 만들려 했지만 배가 항을 드나들기 어렵자 한쪽 상판을 들어올리는 구조로 바뀌면서 명물이 됐다. 1992년 부산 초원복집 사건 때 김기춘 전 법무장관이 지역기관장들에게 "부산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니 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고 말한 것이나 1997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 후보가 부산에서 영도다리 근처에서 사무실을 운영했다며 지지를 호소한 것 모두 이 다리의 상징성을 증명한다.
△영도다리는 눈물의 다리다. 일제가 다리 건설을 위해 끌고 간 이들 중 수많은 목숨이 검푸른 바다와 산사태에 잠기거나 묻혔다. 한국전쟁의 난리통에 부산으로 피난 온 사람들이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헤맸던 곳도 이곳. 부산항 바로 옆에 위치한 데다 '들리는 다리'로 유명해 찾아오기 쉬웠기 때문이다.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가삿말처럼 초승달 뜬 영도다리에는 길 잃은 수많은 금순이를 찾기 위한 '어디 있냐'는 부모형제의 애끓는 사연들이 줄을 이었다. 가족을 못 찾아, 또는 먹고살기 힘들어 바다에 몸을 던지는 이가 많아 '잠깐만'이라는 자살 방지용 푯말까지 등장했다.
△영도다리가 영도대교로 이름을 바꿔 27일 재개통했다. 상판을 들어올리는 도개 기능도 복원됐다. 1966년 교통량 증가와 다리 하부에 상수도관이 생기면서 기능이 중단된 지 47년 만이다. 한때 영원히 사라질 뻔했지만 수많은 시민들이 한마음으로 뭉쳐 되살린 결과다. 힘을 합치면 못할 게 없다는 것을 보여준 다리. 정치판도 모자라 이젠 우리 사회 전체를 이념으로 갈갈이 찢어놓은 우리 정치인들이 꼭 가서 봐야 할 곳이다. /송영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