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진보의 건강성과 이정희

지난해 12월29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총 145건의 안건이 처리됐는데 이 중 딱 2건이 부결됐다. 3심에서는 사건의 사실 인정을 다투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 민사소송법 개정안이 바로 그것이다.

“중형이 선고된 사건에 있어 1ㆍ2심에서의 오심을 바로잡을 길이 없어진다”며 홀로 반대 토론에 나섰던 의원 때문이다.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았던 법안에 대해 자기 소신을 밝히고, 동료 의원의 동의를 이끌어낼 줄 아는 출중한 언변과 열정은 지지 여부를 떠나 국회의원이라면 의당 존중 받아야 할 태도였다. 그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다.


그런 그가 불과 5개월여 만에 놀랍게도 변했다. 그 스스로도 반박하지 못하는 명백한 선거 부정(不正)을 부정(否定)하는 그를 두고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충격’과 ‘공포’그 자체였다”는 비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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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진보의 ‘아이돌’로 불렸던 그가 왜 그렇게 갑작스런 변신을 했는지 속사정을 일일이 알기는 어렵다. ‘자기 조직의 수장(이석기)을 지키기 위해 대신 독배를 마신 것’이라는, 조직폭력배 세계에서나 나올 법한 해석이 있기는 하다. 이 전 대표는 그 속내를 끝내 밝히지 않은 채 최근 “침묵의 형벌을 받겠다”는 짤막한 글을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이 전 대표가 이제와 침묵을 택하는 것은 그의 자유다. 그러나 그의 최근 행동들, 자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모습은 진보를 지지하는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는 점에서 그의 침묵은 비겁하다.

통합진보당은 14일 강기갑 원내대표의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출범시켰다. 보수세력 중 일부는 진보의 몰락을 고소해한다. 그러나 진보 없는 보수는 한쪽 날개를 잃은 새와 같이 불안하다는 점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강 비대위원장은 통합진보당의 사분오열에도 추락한 진보의 건강성을 회복시키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떠안았다.

그러나 이 전 대표가 진보의 지위를 고수한 채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상 그 일은 요원해 보인다. 진보는 이제 이정희를 버려야 할 때인 것 같다.

유병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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