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에서는 깊은 한숨 소리가 흘러 나왔다. 일명 '양철'로 불리는 정병철 전경련 상근 부회장 겸 한경연 부회장과 이승철 전무가 휘두른 구조조정 칼날에 연구위원(박사) 2명과 행정지원 인력 8명이 짐을 쌌다. 지금까지 한경연은 40%에 가까운 직원들을 잘랐다. 그것도 모자라 '양철'은 지금도 감원 대상에 올려놓은 연구위원 3명을 추가로 압박 중이다. 김영용 전 원장은 '양철'의 가혹한 감원 칼날을 막느라 갈등을 빚다 지난 3월 임기를 한 달 남기고 돌연 사직했다. 같은 시간 여의도 KT빌딩 19층 전경련 사무실에서는 A부장이 8개월째 무보직으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해 말 실장 자리에서 보직 해임된 뒤 새 보직을 못 받은 상태지만 전경련 사무국 누구도 A부장이 한경연 퇴직자처럼 그만둘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처럼 간부가 보직 없이 반년 이상 소일하는 것은 전경련 사무국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전경련은 2003년 '성과주의 인사'에 따른 20% 구조조정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냉정하게 실적을 평가, 해고를 해왔다. 두 기관은 평소 인사교류를 할 정도로 하나의 조직과 다름없는 데도 왜 이 같은 차별이 있는 것일까. 전경련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들은 "이게 '양철' 전횡의 대표적인 사례"라며 "자기 사람은 파격 승진에 자리보전까지 해주지만 반대 입장이거나 자기 앞날에 걸림돌이 될 만한 간부들은 승진 누락을 시키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쳐내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인사전횡의 책임자로 지목된 이 전무는 홍보실을 통해 "A부장이 고교 후배라 뒤를 봐주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정규직이라 해고하면 노동법 위반이며 유관기관으로 보내려는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반박했다. 이 같은 해명은 이 전무가 2008년 B부장을 강제 해고했다가 전경련을 상대로 이에 항의하는 소송사건이 벌어지는 등 인사관련 잡음을 계속 일으켜왔던 점을 감안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다. 특히 전경련 안팎에서는 이 전무가 수차례 시행한 인사에서 소위 '양철 라인'이 요직을 차지하거나 발탁 승진을 한 사례가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이 같은 인사가 수년간 지속되면서 사무국이 '양철'의 사조직이라는 비판이 나오기 시작했다"며 "사무국 조직이 경직되고 관료화된 원인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뿐만 아니라 이 전무는 2007년 전무 승진 후 회원사들로부터 거만하고 군림하려 한다는 비판을 계속 받고 있다. LG화학의 한 임원은 "한 조찬모임에 갔더니 이 전무가 거들먹거리며 정부시책을 잘 따르라고 훈계조로 얘기하는 것을 보고 기분이 상했다"고 전했다. 포스코 임원도 "한 모임에 참석했다가 이 전무의 거만한 자세에 눈살을 찌푸렸다"고 혀를 찼다. 1990년 한경연 연구위원으로 입사한 그는 1999년 전경련 기획본부장으로 옮긴 뒤 조석래 당시 회장의 각별한 신임을 등에 업고 2007년 전무로 발탁됐다. 13년째 임원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에게는 전경련ㆍ한경연의 고통분담은 '남의 얘기'다. '양철'가운데 하나인 정 부회장도 무능, 독선, 소통능력 부재, 비뚤어진 언론관 때문에 전경련 위상을 실추시키며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LG전자 사장(CFO) 출신의 정 부회장은 재무통으로 숫자에 밝은 꼼꼼하고 꼬장꼬장한 성격의 소유자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정계와 국민을 대상으로 기업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논객과는 거리가 멀다 보니 '재계의 입'인 전경련 상근 부회장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현명관ㆍ손병두 전 부회장과 비교하면 정 부회장의 존재감은 사실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재계의 일반적인 평가다. 한마디로 무능하다는 얘기다. 이런 정 부회장은 그동안 잘못된 처신과 경박한 언행으로 숱한 물의를 빚어왔다. 지난해 9월 회장단 회의 직후 가진 언론 브리핑에서 정부의 납품가 인하 압력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을 받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며 면박을 준 뒤 한참 동안 납품가 강제 인하의 부당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그는 '전경련이 정부 방침을 비판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개인 사견을 얘기한 것"이라며 언론사에 항의하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보였다. 경박한 처신은 이뿐만이 아니다. 제주도 전경련 하계포럼에 참석한 그는 지난달 28일 수도권이 폭우로 큰 수해를 입고 수십명이 목숨을 잃어 전경련이 골프대회를 공식 취소했음에도 부인과 함께 골프를 즐겼다. 결국 그는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 상근 부회장의 본분을 망각한 것은 물론 반(反)기업 정서를 심화시키는 경거망동을 했다"는 비판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정 부회장의 잘못된 언론관도 큰 문제다. 전경련 상근 부회장이라면 기업 이익을 대변하는 공동선을 제시하며 정치권과 관료, 국민들을 설득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정 부회장은 지난해 말 기자단 송년회, 지난 1월 첫 회장단 회의 브리핑 등에서 "전경련을 비판하는 기자들을 출입정지시키고 싶다"는 비민주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언론의 입을 틀어막아 통제하려는 정 부회장의 태도는 독재정권에서 보였던 악습을 떠올리게 한다. 삼성그룹의 고위 임원은 "전경련은 재계의 목소리를 모아 사회와 소통해야 하고 언론에 잘 설명해 국민들이 이해하게끔 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문제는 전경련에 있는 사람들이 이 일을 잘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들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4대 그룹의 한 부사장도 "기피 대상으로 찍힌 특정 인물을 교체하고 신망을 받을 만한 새로운 사람을 뽑아야 한다"며 "전경련의 인적쇄신을 통해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해 전경련의 정체성(아이덴티티)를 새로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