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근로자 고용기간 제한규정이 시행되기까지 한달도 채 남지 않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이 아무런 대책 없이 허송세월만 하고 있어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정부가 그나마 만들어놓은 정규직 전환 인센티브마저 관련 법 개정 없이는 시행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정치권의 조속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4일 노동부 및 국회에 따르면 노동부는 지난 4월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후 사실상 손을 털었다.
이달 임시국회 개최 여부도 불투명한 현 상황이 유지돼 다음달 고용기간 제한규정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노동부 추산으로 약 70만여명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고용위기에 내몰린다. 이들 가운데 30%만 실업자로 전락한다고 해도 전체 실업자 수는 현재의 95만명에서 115만명으로 증가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노동부는 기존 실업급여 지급과 취업알선 서비스 등을 제외한 새로운 대책은 준비하지 않고 있다.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이대로 갈 경우 당장 다음달부터 실업자가 양산될 것은 자명하다”면서도 “이에 따른 대책은 그때 가서 생각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노동부가 추가 대책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제출한 상황에서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하는 게 자가당착으로 비칠 수 있지 않느냐”는 입장을 나타냈다.
정치권의 움직임은 더욱 한심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비정규직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법안심사소위를 구성하지 못해 논의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당은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반드시 저지해야 할 10대 MB 악법’으로 규정해놓아 처리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부가 7월 비정규직 고용대란설을 주장하지만 한나라당과 정책 연대를 하는 한국노총조차 9월 정기국회 때까지 지켜보자는 의견”이라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지원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두겠다”고 설명했다.
한나라당은 비정규직법 개정안 논의 및 처리를 최우선 과제로 꼽으면서도 정작 당내 입장도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비정규직법 처리뿐만이 아니다. 정규직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여야가 어렵게 확보한 1,185억원의 추가경정예산마저 ‘관계 법률(비정규직법 등)의 제ㆍ개정이 국회에서 확정될 때까지 집행을 유보한다’는 부대의견에 걸려 집행되지 않고 있다. 집행을 위해서는 비정규직법 개정안이 어떤 식으로든 통과돼야 하며 이에 더해 고용보험법과 특별조치법의 제ㆍ개정이 이뤄져야 한다.
노동계의 한 인사는 “정부는 자기들이 비정규직이 아니니까 나 몰라라 하는 것 같고 국회의원들은 자기들이 비정규직인 줄을 모르는 모양”이라며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