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이리 재고 저리 재면 할게 뭐 있겠나"

[CEO&Story 살며 사랑하며…] 우오현 SM그룹 회장<br>한번 정하면 과감하게 돌진하는 성격<br>부도기업 인수해 우량기업으로 일궈… 매출 1조2,000억 중견기업으로 성장<br>강한 책임감과 진정성으로 대하면 직원들도 경영자 마음 이해하게돼



"이리 재고 저리 재면 할 것이 있겠습니까. 마음에 들어서 해야겠다 싶으면 하는 거죠." 거침이 없다. 그리고 솔직하다. 우오현(56) SM그룹 회장은 그래서 때로는 무모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육중한 체구를 줄이기 위해 감량에 나설 때도 '도 아니면 모'식이다. "음식 남기는 것을 싫어하니 살이 찔 수밖에 없다"는 그이지만 일단 다이어트를 결심하면 20~30㎏ 정도는 순식간이다. 고기는 아예 끊고 삶은 야채에 밥 한두 숟가락으로 두어 달을 버틴다. 얼마 전 허리 수술을 받아 다시 다이어트에 돌입했다는 우 회장은 이번에도 자신만만했다. 한 번 정하면 과감하게 돌진하는 그의 성격은 회사경영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건설업에서 20년 넘게 잔뼈가 굵은 그가 제조업으로 눈을 돌린 것이 지난 2004년. 이후 사들인 기업이 총 17개에 달한다. 하나같이 부도난 기업, 모두의 눈밖에 난 퇴출기업들이다. 그렇게 일군 SM그룹은 지금 총매출 1조2,000억원, 모기업 외에도 13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는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개인 돈도 많이 털어 넣었고 우여곡절도 많았다. 특히 2008년의 TK케미칼 인수 결정은 그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아찔하기 짝이 없는 결정이었다. 우 회장이 사양업종의 대명사격인 섬유업체, 그것도 8년간의 워크아웃을 거친 TK케미칼을 인수하겠다고 덤볐을 때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인수가가 3,000억원인데 우리 돈은 480억원밖에 없었고 그나마 죄다 담보가 잡혀서 2중, 3중으로 얽매여 있어 조금만 삐끗하면 그대로 '가는' 상황이었다"며 "남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섬유산업에 그렇게 올인을 했으니 그만큼 무모한 일이 어디 있겠냐"고 우 회장은 당시를 회고한다. 하지만 위험천만하게 보였던 그의 결단은 불과 1년여 만에 보란 듯이 성공을 거뒀다. "영원히 좋은 기업도, 영원히 나쁜 기업도 없다"는 그의 지론대로 TK케미칼은 이제 SM그룹의 최고 수익 계열사로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모두가 끝났다고 외면하는 산업, 부도가 나고 법정관리에 들어간 위기의 기업을 속속 우량기업으로 변신시켜 온 그에게는 이제 '인수합병(M&A)의 귀재' '마이더스의 손'이라는 수식어가 당연한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그런 그가 미래의 도약을 위해 다시 한 번 꿈꾸는 새로운 도전은 전기자동차 사업이다. 전지제조 계열사인 벡셀과 남선알미늄ㆍTK케미칼 등 주요 계열사 연구진이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와 차체를 경량화하는 프레임을 개발해 특화된 소형 전기차를 출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쌍용자동차를 인수, 소형 전기차로 특화된 초우량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방안도 그의 구상에 포함돼 있다. "자동차 사업이 욕심일 수도 있지만 올해 창출하는 이익을 기반으로 내년에는 한 번 덤벼볼 생각"이라며 "SM그룹사의 연구진이 함께 머리를 맞대면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냐"고 거듭 강조했다. 넘치는 자신감에도 불구하고 여러 계열사들 중에는 수년째 적자에 허덕이는 기업도 물론 있다. 공교롭게도 기자가 우 회장을 만나기 직전 적자 계열사 임원 두 명이 사표를 들고 왔다고 한다. 3년째 계속되는 적자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었다. 사표를 내미는 임원들에게 우 회장은 불같이 화를 냈다. "당신들에게 사표 쓸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정말로 회사에 미안한 생각이 있다면 월급을 안 받고라도 열심히 회사를 살려내서 정상화시킨 뒤에 다시 사표를 가져 오라고 임원들을 돌려 보냈단다. "요즘은 경영이 벽에 부딪치면 사표를 쓰는 것이 보답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잘못 생각하는 것"이라고 우 회장은 강조한다. 불벼락을 맞은 임원들은 겸연쩍게 웃으며 회장실을 나섰다고 한다. 이날의 소동은 경영인으로서 강한 책임의식을 강조하는 그의 경영철학을 보여주는 일례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여러 부실기업을 정상화시킨 것 역시 그의 말에 따르자면 "M&A의 귀재여서가 아니라 경영자가 직접 연구하고 분석해서 실천했기 때문"이다. "남의 손에 맡기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때 '기업사냥꾼'이라는 오명을 쓰며 피인수 기업 노조 측의 거센 반발에도 부딪쳤던 우 회장이 오늘날 노사화합의 모범사례로 꼽히게 되기까지는 경영자로서의 강한 책임감과 진정성을 갖고 직원들을 대하는 그의 면목이 큰 역할을 했다. 남선알미늄 인수 당시 쇠파이프를 들고 그를 막아서던 노조의 마음을 돌린 것은 자신의 집을 담보로 잡히면서 사업자금 마련에 고군분투하는 그의 모습이었다. 지난해 TK케미칼의 임직원이 임금 10%를 자진 삭감한 것 역시 월급 한 푼 받지 않고 회사 살리기에 매진한 회장의 솔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가 인수한 TK케미칼ㆍ남선알미늄ㆍ벡셀 등은 이제 노사 간에 돈독한 화합이 이뤄지는 기업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다 보니 노사 간 화합에는 그의 소탈한 성품도 한몫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는 '회장님 포스'보다 '사람 냄새'가 훨씬 강하게 난다. 거드름 피우는 것이 무엇보다 싫다는 그의 천성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실려 자연스레 상대에게 전달된다. 그에게는 여전히 먼지에 뒤덮여 인부들과 막걸리 잔을 주고받던 투박한 청년 사업가의 모습이 남아 있다. "회장이 된 지금은 그런 재미가 없어서 외롭기도 하다"는 그는 대신 요즘처럼 날 좋은 계절이면 고향인 전라도로 내려가 시골장에서 500원을 깎네 마네 실랑이를 벌이고 인심 좋은 아주머니에게는 국수 한 그릇씩 대접하며 세상 얘기 나누는 것을 삶의 즐거움으로 여긴다. 뭐 하는 이냐고 물으면 그저 "장사한다"고 둘러댄다. 남도에 봄 꽃이 한창 흐드러진 이번주 말에도 광주 어딘가의 장터에서 농담을 주고받으며 소일하는 그의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TK케미칼·남선알미늄 '성공 신화'의 주춧돌
■ 인수후 흑자전환… "기술있는 기업은 회생" 지론 확인시켜 지난 5년여 동안 10여개에 달하는 회사를 공격적으로 인수해온 우오현 회장의 '턴어라운드' 능력이 가장 유감없이 발휘된 기업을 꼽으라면 단연 TK케미칼과 남선알미늄이다. "오랜 시간 한 우물을 파온 전통과 기술력이 있는 기업은 조금만 도와줘도 단숨에 회생할 수 있다"는 그의 지론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이들 기업은 SM그룹 편입 이후 순식간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성공신화의 주춧돌이 됐다. 섬유산업 1세대 기업인 TK케미칼은 지난 1999년부터 2008년의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기간을 거쳐 SM에 인수됐고 지금은 월 70억~8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는 알짜기업이다. 7,0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TKC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82.5% 늘어난 502억원, 당기순손익은 2008년 140억원의 적자에서 319억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60여년 전통의 남선알미늄 역시 약 10년간의 법정관리를 거친 후 지난해에는 6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고 업계 1위 탈환에 성공했다. 건전지 제조업체인 벡셀 역시 2005년 인수된 후 2년 만인 2007년 영업이익을 흑자로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이제 그는 한동안 주춤했던 인수합병(M&A) 행보를 다시 이어가며 또 다른 턴어라운드 사례를 탄생시킬 계획이다. "이제 자금력을 갖춘 만큼 장래성 있는 기업을 사들여 경남모직 등 주요 사업군에 속하는 적자 계열사를 우량회사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작은 불을 끄려면 더 큰 불을 붙여야 한다"는 것이 앞으로의 경영정상화 계획이다. 건설사업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 건설은 끝났다"고 단언하는 그는 "망한 중소 업체를 M&A해 대형화하고 해외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매일 아침 좋은 M&A 물건이 나오지 않았는지 신문을 챙겨 본다"는 그가 또 어떤 '진흙 속의 진주'를 발굴해낼지 기대된다.

■우오현 회장은 ▦1953년 전남 고흥 ▦1972년 광주상업고 졸업 ▦1988년 삼라건설 설립 ▦1991년 광주대 건축공학과 졸업 ▦1992년 전남대경영대학원 수료 ▦1996년 조선대 교육대학원 졸업 ▦1990~2004년 광주권발전연구소 상임이사 ▦2004년 진덕산업 인수 ▦2005년 벡셀 인수 ▦2007년 남선알미늄 인수 ▦2008년 TK케미칼 인수 ▦2008년~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부회장 ▦현 SM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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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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